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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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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해고 당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담다

2년 동안 이어진 ‘아사히지회’의 투쟁 <들꽃, 공단에 피다>
등록 2017-06-15 17:21 수정 2020-05-03 04:28

회사는 비정규직 노동자 16명에게 일손을 놓으라고 했다. 노동조합이 필요했다. 2015년 5월29일 노조설립필증을 받았다. 2주 만에 138명이 가입했다. 노조 설립 한 달께인 6월30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속한 하청업체는 전기공사를 이유로 9년 만에 전체 휴무를 공지했다. 노동자들은 공장에 나가지 않았다. 이날 170명에게 해고 문자가 전달됐다. 떠난 공장엔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하청업체는 폐업했다. 노동자들은 2년을 싸우고 있다. 지금 노조엔 22명만 남았다.

휴대전화 액정을 만드는 일본 기업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 노조 ‘아사히비정규직지회’(아사히지회) 이야기다. 아사히글라스는 연매출 1조원을 훌쩍 넘기는 배부른 기업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점심시간 20분 안에 주린 배를 채워야 했고, 실수하면 낙인과 같은 ‘징벌조끼’를 입고 일했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 노조를 만들었고, 사람답게 살고 싶어 투쟁을 이어간다.

아사히지회가 투쟁 2주년을 맞아 낸 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조합원 22명이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 영어학원을 가겠다는 고등학생 딸에게 “니 진짜 할까가?”를 몇 번이나 물어야 했던 아버지(허상원), 약육강식을 철칙처럼 믿고 살다가 투쟁을 하면서 ‘함께하는 삶의 방식’을 배운 노동자(안진석), 노조는 ‘아주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헌호 형’(지회장)을 만나 투쟁에서 희망을 찾게 된 이(김정태)들의 사연이 묶였다. 아사히지회 조합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페이지마다 끈적끈적한 사람의 흔적이 묻어 눈을 잡아끈다.

오수일 조합원은 다른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과 서울 광화문의 한 빌딩 광고탑에 올라 26일 동안 고공 단식 투쟁을 한 뒤 5월10일 땅을 밟았다. 광고탑 위에서 원고를 쓴 그는 “노동자도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이라고 적었다. 대한민국에서 이 마땅한 소원을 이루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마치 들꽃이 시멘트를 뚫고 자라는 것만큼.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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