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그래도 인간이 희망이다

망가진 지구를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 <휴먼에이지>
등록 2017-05-28 15:42 수정 2020-05-03 04:28

지구가 볼 때 인간은 별난 생물종일 게다. 티끌만 한 생을 사는 주제에 “땅에서 하늘까지 온 자연계”를 헤집어놓았다. 인간은 “세균적”으로 증가해 지표 75%를 점령했다. 땅을 개간하고 바다를 막고 퇴적물로 육지를 창조하고 하늘을 누빔으로써 구름(비행운)까지 만든다. “마치 신처럼.” 여기에 더해 200년간 과학기술이라는 걸 급속도로 발달시키더니 미세먼지를 풀풀 날리고, 서식지를 교란하고, 기후를 바꿔버렸다.

‘아! 이런 골칫덩이!’ 탄식을 내뱉는 지구를 살살 달래는 사람이 있다. (김명남 옮김, 문학동네 펴냄)의 지은이 다이앤 에커먼이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지구를 추스릴 희망이라고 말한다.

정말? 휴먼에이지는 인류세(Anthropocene)의 일상어쯤 된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발달시킨 과학기술이 지구를 쥐락펴락할 정도라서, 지질연대표에서 충적세는 끝나고 인류세가 시작됐다는 기후과학자 파울 크뤼천에 동조하는 단어다. 지구를 찰흙 삼아 만지작거리는 인간의 산업 활동은 지구온난화, 생태계 파괴, 서식지 교란을 일으켰다. 여기까지는 환경학자들에게서 늘 들어오던 ‘지구 파괴 주범’ 인류, 암담한 미래다.

달라지는 지점은 여기다. 인간이 반성하기 시작했고, 자연의 분노를 눅일 방법을 찾고 있다는 아주 생소한 주장이다. 지하철 통근자들이 인체에서 내뿜는 열로 임대주택을 데우는 프랑스 파리의 설계가, 합성 비료가 필요 없는 해조류와 조개를 키워 탄소를 흡수하고 해일에 맞서는 바다농부…. 에커먼이 농업·어업·기후·지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만난 서른한 가지 장면은 인류가 지구를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인류가 자연과 공생을 도모하는 모습을 유쾌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지구온난화 문제도 “모두에게 끔찍한 세상은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인간이 교란한 날씨는 알래스카 멸종위기종 울음고니에게 되레 유리하다. 길어진 여름 동안 먹이를 찾고 새끼를 기를 수 있다. 범고래도 따뜻해진 바닷물로 이득을 본다. 얼음이 녹은 덕에 활동 범위를 북극으로 넓혀 먹이를 더 많이 잡을 수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겨울이 따뜻해지면 난방을 적게 해 에너지가 절약된다는 식이다. 이토록 낙천적이라니! 께름칙함이 남는다.

물론 중요한 단서가 남아 있다. “인공은 그르고 자연은 옳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탈피해야” 한다. 보존과 대립, 자연과 인공을 대립하는 것으로 인식하면 ‘인간의 시대’를 헤쳐나갈 수 없다. 자연만을 지칭하던 ‘경관’이라는 단어가 우리가 창조한 도시, 마을, 잔디밭에도 붙듯 “자연과 인공의 경계는 이미 모호”해졌다. 따라서 바다를 그대로 두는 것보다 개발과 동시에 정화(淨化)해가는 게 더 유익하다고 본다.

과학책인데도 마치 한 편의 소설책을 읽은 듯하다. 저자가 과학을 시적이고 명랑한 문장으로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은 따스한 시선으로 망가진 지구를 구하기 위해 고심하는 이들을 대하기 때문이다. 문학적 따뜻함이 깃든 문장이 작가의 낙천성을 더 돋보이게 한다. “우리 시대는 숱한 죄를 지었지만 숱한 발명도 이뤄냈다. (…) 우리의 실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우리의 재능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 의심의 눈초리는 거둬지고, 에커먼의 발칙한 애정에 설득당한다. 그리고 조너선 와이너처럼 무릎을 탁 칠지도. “이게 바로 미래를 내다보는 방법이지!”

장수경 편집3팀 기자 flying710@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