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오월 갯무꽃이 일렁였다. 바다 벼랑에 핀 찔레꽃이 눈을 찔렀다. 깊고 맑은 옥빛, 고향 바다는 그렇게 봄고개를 넘고 있었다. 반백 년이 걸렸다. 한 번도 그 바다를 잊은 적 없다. 그토록 꿈꾸던 고향 무대. 재일 코리아성악앙상블을 이끌고 온 백발 작곡가의 지휘는 세월의 힘이 넘쳤다.
고향 무대에 선 노작곡가
지난 5월14일 제주대 아라뮤즈홀에서는 매우 특별한 연주회가 열렸다. 재일 성악가이자 작곡가 한재숙이 그의 딸인 독일에서 활동하는 세계적 피아니스트 한가야와 함께한 무대였다. 독일 카를스루에대학 음대생인 외손녀 한애나의 오고무까지 곁들인 보기 드문 삼대의 무대였다.
객석이 흔들렸다. 눈가로 손을 대는 청중이 보였다. “지금쯤 고향에 노란꽃은 피어 있겠지….” 노작곡가의 가 성악가 안드레아 신의 목소리로 울려퍼질 때였다. 초연인 이 곡을 포함해 두 시간 동안 딸 한가야씨는 혼신을 다해 건반을 두드렸다. 객석의 환호에 여든넷 노장은 꿈결 같다 했다. 그의 눈은 젖어 있었다. 참 오래된 꿈이었다. 번번이 여러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으니. 너무나 늦은 아버지의 무대가 안쓰러웠을까. “빨갱이 이념 때문에….” 연주가 끝난 후 딸은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 부녀를 처음 만난 때는 십수 년 전. 그때 보았다. 참으로 간절하던 ‘망향 제주’를. 언젠가 고향 땅에서 4·3 진혼곡을 연주하고 싶다고도 했다. 한재숙. 열여섯 소년에게 휘몰아친 4·3의 광풍을 뚫고 제주 바다를 건넌 재일 1세. 너만은 살아야 한다며 할머니는 손자를 통통배에 태웠다. 고향 북촌리, 이름만으로도 고통스러운 대학살의 마을. 1949년 1월, 집단 학살 속에 해녀였던 어머니의 희생 소식을 들은 것은 일본 오사카에서였다.
견뎌야 하는 삶 속에 그를 버티게 해준 힘은 고향의 노동요였다. 제주도 민요는 늘 그의 귓가를 휘저었다. 그 힘찬 민요에서 그는 어머니를 만났으리. 성악가이기도 한 그는 점점 정체성을 잃어가는 동포들에게 우리 노래를 가르치고, 아리랑의 밤을 열어 도쿄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도 했다. 어느 순간도 고향을 잊은 적 없다 했다. 그럼에도 꼬리표처럼 섬의 빨갱이 낙인은 질기게 따라붙었다. 그것은 딸에게도 전이됐다.
고향 통영을 그리다 상처 입고 떠난 위대한 작곡가 윤이상과 함께 공연하기도 했던 한가야. 그녀를 아프게 한 것은 독일에서 한국인 유학생들을 만나던 1982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처음 써봤을 때다. “빨갱이! 그러면서 나를 피해 다녔어요. 넌 왜 그렇게 웃을 수 있냐”고. 왜 그럴까. 아주 심각했다. 그때 정리했다. 내가 누구냐, 뿌리가 어디냐를 찾는 과정이 예술이라고. 하지만 역시 두 다리가 대지에 서 있어야 하고, 그것을 계속 찾다보니 거기에 고향이 있었다고.
재일동포들, 이념 굴레 벗을 수 있기를
마침 문재인 대통령 취임 나흘 만에 이뤄진 무대였다. 문재인 시대, 새 정부 탄생에 누구보다 설레는 이들이 바다 건너 있다. 온갖 서러움과 차별을 견뎌야 하는 삶 아니던가. 전전긍긍, 한-일 관계가 악화될수록 가장 눈초리를 받던 존재가 바로 그들이었기에. 일제강점기와 이후, 수많은 사람이 건너간 남의 나라 땅. 그들은 ‘망향’의 노래를 부른다. 이제 희망한다.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 해결과 함께 재일동포들의 인권문제에도 관심 가져주기를. 이념의 굴레에서 해방되고 마음껏 고향을 찾을 수 있기를. 재외동포와 차세대를 위한 교육지원 정책 등을 세워주기를. 조금만 더 바란다면 동포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대통령, 재일동포 아이들에게도 대통령의 사인을 받는 기회가 있기를. 옆자리 재일동포가 그런다. “우리는 재외 국민이지 외국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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