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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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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조산하 시작은 생태주의

공생공존의 눈으로 역사 톺아본 <생태주의 역사강의>
등록 2017-05-20 17:02 수정 2020-05-03 04:28

재조산하(再造山河).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기간 운용했다는 ‘집권 준비팀’ 이름이다. 그 자신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낸 말이기도 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의 적폐를 청산하는 것은 곧 나라를 새로 만드는 것과 같다는 뜻이 담겼다. 재조산하는 에서 전거를 찾을 수 있다. 임진년 왜란이 터진 이듬해인 1593년(선조 26년) 11월, 서애 유성룡을 평가한 기록이 보인다. “그는 반드시 왕을 위하여 근심을 나누고 일을 맡아서 어려움을 물리치고 어지러움을 진정하여 사직을 안정시킬 것이며 산하를 재조할 것입니다.”

올해 갑년을 맞은 사학자 백승종에게 재조산하는 생태주의에 닿는다. (한티재 펴냄)에서 그는 책의 부제 그대로 ‘근대와 국가를 다시 묻는다’.

지은이는 미국의 생태사상가 머리 북친(1921~2006)의 말을 빌려 말한다. 지은이의 근본 문제의식이다. “그는 생태계의 모든 문제가 인간사회의 부조리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구조를 척결하지 않고서는 생태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허다한 문제들은 기회가 균등하지 못하고 억압과 차별이 제도화됨으로써 일어난 것이다.”

책에는 ‘생태주의 역사가’가 된 내력을 밝힌 글부터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역사의 눈으로 이해하는 글까지 8편이 담겼다. 10년 사이 쓴 글을 모았다. 관점은 또렷하고 서술은 간결하다. 지은이는 생태주의의 지향점을 이렇게 추린다. 근대 국민국가의 틀에서 벗어나고, 경제지상주의를 거부하며, 분배의 정의를 강조하고,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공동체의 기능을 강화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생태주의는 기성품이 아니다. 생태주의의 이상은 아직 열려 있다.”

유독 눈길을 잡는 글이 있다. ‘갑오동학농민혁명과 소농’이다. 지은이가 보기에 동학농민혁명의 주체는 ‘소농’들이 모인 마을공동체(里中·리중)였다. 소농 중심 사회의 미덕이던 ‘사회적 합의’, 바꿔 말하면 사회 안전망을 위정자들이 무분별한 개화정책(무역 개방)으로 무너뜨린 데 대한 분노가 농민 봉기의 원동력이었다는 분석은 곱씹을 만하다. 2017년 착잡한 농민·농촌·농업 현실이 겹치기 때문이다. 국가폭력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이 상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어서 지은이는 박정희 신화를 깨고 그를 정치적 주술사로 단언하며(‘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거짓이 진실을 몰아내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경고한다(‘4대강과 후쿠시마의 비극을 넘어’).

지은이는 말한다. “생명 존중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엄동설한에 갇혀 있다.” ‘이게 나라냐’는 깃발을 내린 지금, 우리는 또 다른 깃발에 어떤 글자를 새겨야 할까. 동학은 일러준다. ‘유무상자 해원상생’(有無相資 解寃相生). 가진 사람과 없이 사는 사람이 서로 도우며 살고 맺힌 원한을 풀어 더불어 살아가자. 우리의 재조산하, 이제부터 시작이다.

전진식 교열팀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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