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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어법? 이젠 정공법으로”

정치 에세이 [B급 정치] [서민적 정치] 쓴 기생충학자 서민 교수
등록 2017-05-18 20:04 수정 2020-05-03 04:28

그의 반어법은 힘이 세다. 욕인지 칭찬인지 헷갈리게 하며 꼬집어 비판한다. 술술 읽히고 웃기기까지 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박근혜의 장점은 시간이 더디게 가게 하고 늘 긴장할 수 있게 해주고 국정원을 세계적 정보기관으로 키운 것”([B급 정치])이라고 ‘돌려깐다’. 그래서 자신이 블랙리스트에 안 올라간 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반어법을 이해 못하고 그냥 칭찬인 줄 안 모양”이라고 미뤄 짐작한다. 기생충학자인 서민 단국대 의대교수 이야기다.

그가 4월 [B급 정치](인물과사상사 펴냄)와 [서민적 정치](생각정원 펴냄) 정치 에세이 두 권을 동시에 펴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사 칼럼을 쓰며 톺아본 한국 정치의 민낯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를 19대 대선 다음날인 5월10일, 경기도 일산에서 만났다.

“우주의 기운이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부와 명예를 얻었다. 아니 부는 아니고, 하하하.” 그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특유의 반어법이 가득한 시사 칼럼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를 키운 보수정권이 가고 진보정권이 집권했으니 글감이 넘치던 호시절이 다 지나간 것 아닌가. “(문재인 정부) 비판할 게 많다. 반어법? 이젠 정공법으로 공격하겠다. 날 잡아가진 않을 거니까. 재미는 없겠지만.”

그는 진보정권이 10년 만에 집권한 현 정치 상황을 야구에 빗대어 말한다.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이 우승했는데 그 과정이 드라마틱했다. (문재인 정부의 집권 상황이) 그때 같다. 두산은 밑바닥에서 올라와 우승했다. 상위 팀에서 자멸한 것도 있고. 실력보다 ‘운빨’이었다. (그 우승엔) 우주의 기운이 있었다.”

야구 마니아였다는 그를 정치로 이끈 건 한마디의 말이었다. 강준만 교수의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직무유기”라는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단다. 그때부터 신문을 보고 책을 읽기 시작했고 시사 칼럼도 쓰게 됐다. 그렇게 1998년 정치에 입문했으니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정치 동기’란다.

“책을 통해 길러진 통찰력은 세상과 사람을 제대로 꿰뚫어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공감능력과 논리력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나를 표현하면서 우리는 서민적 정치의 목소리를 점점 키울 수 있게 된다. (…)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도 누군가에겐 무시무시한 괴물일지 모른다. 타인과 의견을 나누고 책을 읽으며 세상과 사람에 대해 생각하자. 이것이 서민적 정치를 위한 첫걸음이다.”([서민적 정치]) 유권자는 관중으로서 참여와 감시를

기생충학자가 본 한국 정치의 현주소는 어떤가. 그는 ‘좌·우파를 넘어 서민파를 위한 발칙한 통찰’이란 부제를 단 책 [서민적 정치]에서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로 지역감정, 색깔론, 영남 패권주의 등을 꼽는다. 이것이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구실까지 한다고. 정치 혐오는 정당정치에 대한 국민의 무관심도 한몫한다고 주장한다.

“촛불로 상징되는 거리의 정치는 우리나라에서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서민적 정치])

더불어 고령화사회에 맞서 투표연령 상한제, 국회의원 정년제 같은 발칙한 제안도 한다. 고령화사회에서 고령화하는 정치를 우려해서 나온 대안이다.

그는 정치가 야구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모두 철저히 룰에 따라 움직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야구 심판이 엉뚱한 판정을 내리면 관중은 야유를 보낸다. 정치 역시 야구 관중 같은 유권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야구 규칙을 모르면 야구 관람 자체가 불가능하듯, 정치를 감시하려면 그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우리가 정치를 공부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선거 때만 정치의 주체가 되고 이후에는 팝콘 먹는 구경꾼처럼 느껴졌다면,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치가 바뀌어야 삶의 질이 바뀌기 때문이다. 국민은 관중으로서 비판과 감시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는 유권자가 정치에 대해 ‘불신’ 아니면 ‘광신’, 두 가지 극단으로 쏠리는 것을 우려한다. 정치가 자신과 상관없다고 일방적으로 불신하며 정치와 삶을 분리해서 생각하거나, 정치보다는 특정 정치인에게 열광해 팬클럽을 자처하고 나선다. 그래서 서민 교수는 “특정인에게 쏠린 팬클럽 정치가 자칫 정치의 퇴보를 가져올 수 있다”며 “더 이상 금배지의 전횡과 특권을 방관하지 말자. 제대로 된 정치가 뿌리내리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의 권리이자 책임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

‘서민적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이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민 교수도 정치에 무관심한 이들에게 ‘정치적 조언’을 건넨다. 무엇보다 국회의원의 가슴이 아니라, 우리 서민들 가슴에 금색 배지를 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 각자가 정치인보다 더 높은 주권자임을 생각하고 가슴에 금배지를 단 것처럼 정치의 주체로 바로 설 때, 서민적 정치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새 정부를 향해 날선 말을 던진다. “전임자가 후진 사람이어서 유리한 게 있다. 기본만 해도 잘한 것 같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정치에 눈떠서 수천만 개의 눈이 향해 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벌떼같이 달려들어 깔려고 할 것이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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