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로 밤에 24시간 뉴스 보도 채널을 틀어놓고 잠을 자.”
2024년 12월3일 대통령 윤석열이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대학생이 많이 찾는 한 식당에 혼자 밥을 먹으러 갔다가 옆 테이블에 앉은 여학생들의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됐다. 계엄 선포 이후 뉴스를 들으며 잔다는 여학생은 경계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친구에게 말했다. “(계엄이 선포됐던) 그날 나는 일찍 잠이 들어서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서야 뉴스를 보고 소식을 알게 됐는데 너무 무서웠어. 그날 이후로 2~3시간 단위로 잠에서 깨 뉴스를 확인하게 됐어. 윤석열이 혹시 다시 계엄을 선포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야.”
식당을 떠난 뒤에도 그 학생의 목소리가 오랫동안 귓가를 맴돌았다. 헌법에 근거하지 않은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대통령은 한 명이지만, 계엄에 대해 느끼는 시민의 공포는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분쟁과 국가비상사태에 대해 여성이 느끼는 두려움은 다른 인구 집단에 견줘 더 클 수밖에 없다. 가부장적인 전통·사회문화와 극단적 폭력이 지배하는 전쟁이 맞물린 지점에서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들은 목소리를 잃고 권리를 박탈당했다. 일제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은 우리는 역사 기록과 구전을 통해 분쟁 상황에서 여성 인권이 얼마나 위태로울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 2024년 세밑과 2025년 새해,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의 계엄을 규탄하고 탄핵과 체포를 촉구하는 집회 현장에 2030 여성의 참여가 많은 것은 이러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촉구하고 이스라엘의 침략을 규탄하는 집회에 연대하는 2030 여성이 많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략 전쟁으로 발생하는 피해는 모두에게 동등하게 전가되지 않고 여성에게 더욱 가혹한 부담을 지우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여성들은 남편과 자녀들이 구금되고 공격받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하고, 이스라엘 감옥에서 젠더 폭력과 고문을 당하기도 하며, 가족과 공동체 부양이라는 목표 아래 열악한 일자리와 가사노동을 힘겹게 끌어안고 있다. 팔레스타인 가족법은 ‘여성이 혼인하기 위해선 가족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정하는데 남성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법이다. 이렇게 여성과 남성을 차등적으로 간주하는 샤리아 율법의 영향 아래 많은 팔레스타인 여성이 전쟁의 폭력과 남편의 폭력에 이중으로 고통받고 있다. 2025년 대한민국의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우리의 과거 혹은 (상상하고 싶지 않은) 미래와 닮았을지도 모른다.
아시아 분쟁 지역의 피해자와 활동가를 지원하는 시민단체 ‘사단법인 아디’(ADI·Asian Dignity Initiative)가 팔레스타인 여성 인권에 관심을 가진 이유다. 2018~2019년 팔레스타인에서 인권 조사를 했던 아디는 2019년 현지 여성 활동가로부터 “팔레스타인에는 이스라엘의 점령 문제만큼이나 젠더 폭력 문제도 심각하다. 하지만 문화적 특성 때문에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전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활발할 때도 여기(팔레스타인)에서는 미투 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젠더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금기시하고, 외부에 알리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현지 여성인권센터 설립을 계획했다.
2020년 아디는 ‘(재)바보의나눔’ 재단의 지원을 받아 팔레스타인 나블루스 지역에 ‘여성지원센터’ 사업을 시작했다. 센터는 이후 ‘여성 활동가 역량 강화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해 현지 여성 활동가를 양성하는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이후 아디는 현지 여성 인권 보고서 ‘아무도 그녀들에게 묻지 않았다’(2021년), ‘선을 넘는 팔레스타인 여성들’(2021년), ‘코로나 시대, 팔레스타인 여성으로 산다는 건’(2022년)을 잇따라 펴냈다.
이스라엘의 침략 전쟁이 발발한 2023년 이후 아디는 현지 여성의 이야기를 당사자들이 직접 취재해 기사를 쓰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아디의 이동화 팀장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전쟁 현장에서 나오는 뉴스들은 주로 사건사고 위주로 보도되고,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 남성 엘리트를 중심으로 생성되는데 어쩌면 그러한 뉴스 생성 방식과 구조 자체가 전쟁을 고착화하는 것일 수 있다”며 “이스라엘의 침략으로 팔레스타인이 겪는 피해는 건조하고 딱딱한 숫자로 치환되지 않는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데 아디는 그러한 현실을 팔레스타인 현지 여성의 시각으로 풀어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현지(주로 서안지구)에서 6개월 동안 취재 관련 교육을 받고 작성한 다섯 개의 기사를 한겨레21이 아디로부터 전달받아 차례로 싣는다.
첫 번째 편지 읽기
“죽음만 기다린다는 가자에 남겨진 아이들… 눈물도 흘릴 수 없을 만큼 고통”
https://h21.hani.co.kr/arti/world/world_general/56689.html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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