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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추적기 <끝나지 않은 전쟁 >

겨울날의 ‘뻗치기’를 추억함
등록 2017-04-22 17:33 수정 2020-05-03 04:28

‘뻗치기’를 하던 겨울은 몹시 추웠다. 찬바람 불던 최순실씨 집 앞이었다. 2014년 11월 가 정윤회씨의 국정 개입 의혹을 다룬 청와대 문건을 보도했다. 당시 난 사회부 기자였다. “박근혜에게 문고리 3인방이 살갗이라면 오장육부는 최순실”이라는 말이 청와대 관계자에게서 흘러나왔다. 최순실이란 이름을 알게 된 건 그즈음이었다. ‘캡’이라 불리는 팀장이 서울 강남구 신사동 ㅁ빌딩 앞 뻗치기를 지시했다. 빌딩은 최씨 소유로 펜트하우스가 그의 거처였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최씨를 무작정 뻗치고 기다리는 게 나와 타사 사회부 기자들의 일이었다.

몰래 지하 주자창에 들어가 최씨가 타고 다닌다던 아우디8 시리즈가 있는지 훔쳐봤다. 관리인은 나가라고 언성을 높였다. 비좁은 계단을 기어 올라가 벽에 귀를 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언 손이 말을 듣지 않아 입김을 불어가며 텔레그램 따위로 보고했다. 최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2주를 보내고 역삼동 다세대빌라로 뻗치기 장소를 옮겼다. 1990년대 매매가 이뤄진 최태민의 옛 소유 빌라였다. 최순실의 친정이었다. 거주자를 따라 몰래 건물 안으로 들어가 현관문에 귀를 댔다. 건물 건너편 반지하 주차장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었다. 혼자였다. 그를 만나면 물어볼 질문을 외우고 또 외웠다. 밤늦도록 최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 책은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3년 동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추적한 기록이다. 한 신부님의 제보로 최순실의 존재를 확인한 그는 2014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승마 공주’ 정유라 특혜 의혹을 질의해 잊혔던 최순실의 이름을 세상에 다시 알렸다. 이후 여러 제보자를 만나고 미국과 독일을 오가며 국정 농단의 증거를 찾기 위해 발품을 들였다. 그의 추적기를 보면서 천둥벌거숭이처럼 좌충우돌한 겨울날의 뻗치기가 떠올랐다. 박근혜 집권 2년차였던 그때 취재는 쉽지 않았다. 국정 농단의 냄새는 진동했지만 진실은 좀처럼 만져지지 않았다. 좀더 오래 뻗치기를 했더라면 최씨를 마주쳤을까. 마주쳤다면 사태가 달라졌을까.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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