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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차올라…

등록 2017-03-31 16:27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엄마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침대에 누워 재잘대던 아이가 보드라운 팔로 내 목을 감싸며 말했다. “엄마, 그런데 왜 사람은 죽어? 나이가 어려도 왜 먼저 죽기도 하는 거야?” 밤늦게 퇴근해서 동화책 읽어주는 것도 건너뛰고 불을 끄고는 밤새 써야 할 기사 생각에만 골몰했던 ‘불량 엄마’에게 난데없이 우주를 아우르는 철학적 질문이라니. “음, 하느님이 하늘나라에서 빨리 보고 싶어 그럴 거야.” “하늘에서도 우리 다 내려다볼 수 있잖아. 그런데 왜?” 교회도, 성당도 다니지 않으면서 하느님 핑계를 댄 엄마의 실수였다. “글쎄, 하느님 옆에 두고 싶으신가봐.”

그래, 왜일까? 왜였을까? 쌔근쌔근 잠든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자꾸 눈물이 차올랐다. 그날 저녁 8시50분,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앞바다에선 세월호 선체 본인양 작업이 시작됐다. 세월호 유가족 엄마들도 수없이 묻고 또 물었겠지. 왜 세월호는 침몰했을까, 왜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을까, 왜 해경은 온 힘을 다해 구하지 않았을까, 왜 박근혜는 사고 7시간 만에야 나타났을까, 왜 3년이 다 되도록 세월호를 인양하지 않았을까.

남현철, 박영인, 조은화, 허다윤. 제주도로 수학여행 떠난 지 1073일이 되도록 캄캄한 바닷속에서 엄마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단원고 아이들의 이름을 나직이 불러보았다. “다윤아, 이제 어둡고 추운 데서 나와 엄마랑 손잡고 집에 가자.” 바다를 향한 다윤이 엄마의 간절한 속삭임. 본인양 작업 7시간 만인 다음날 새벽 4시 무렵, 세월호가 드디어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럴 거면서 왜? 심하게 녹슨 세월호가 물 밖으로 나올수록 의구심은 점점 더 커졌다. 박근혜가 대통령에서 파면된 지 12일 만에, 박근혜가 검찰에서 조사받고 나간 지 12시간 만에 세월호가 올라왔다. 인양 작업의 기술적 어려움을 감안해도 이렇게 하룻밤 만에 올라올 것을 왜 3년이나 질질 끌었을까. 2015년 8월 인양업체가 선정된 뒤로도 기상 조건과 조류, 인양 방식 등을 놓고 1년6개월여를 허비했다. 박근혜가 사라지자 미수습자 9명의 돌아올 길이 열렸다.

“우리 지현이가 그랬지. 엄마가 없으면 하나도 행복하지 않아. 엄마도 그래. 우리 지현이가 없으니까 하나도 행복하지 않아.”(단원고 남지현양 엄마의 캘리그래피 작품)

지현이 엄마처럼 수연이 엄마도 세상을 떠난 딸에게 손글씨로 엽서를 적었다. “수연아, 사랑한다. 엄마가 미안하다. 네 마음 몰라준 것이. 그동안 고마운 딸이었다. 사랑한다.” 전북 전주시 한 특성화고 전북 전주시 한 특성화고등학교 졸업을 앞두던 딸은 지난 1월23일 저수지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왜? 왜였을까? “엄마, 나 회사 그만두면 안 돼?” 지난해 9월부터 현장실습을 나가 LG유플러스 고객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던 딸은 서너 차례 물었다고 한다. 엄마는 참고 다니라는 말밖에 해주지 못했다. “아빠, 나 ‘콜 수’ 못 채웠어.” 퇴근 시간이 늦어지면 수연이는 아빠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남기곤 했다. 수연이가 일한 콜센터 부서는 ‘해지’를 막는, 이른바 고객을 설득하는 방어 부서였다. 고객에게 심한 말을 듣고 많이 울기도 했다. 업무량인 ‘콜 수’를 채우지 못하면 고객과 통화한 녹음파일도 들어야 했다. 그러나 회사 쪽은 실적을 강요하거나 업무상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다고 변명만 한다. 2014년에도 이 회사 콜센터 상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월17일 콜센터 앞에서 수연이의 추모제가 열렸다. 엄마는 엽서를 하얀 꽃다발 위에 올렸다.

현장실습생 수연이도, 가방에 컵라면을 넣고 다니며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 어이없는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구의역 김군’도 모두 19살이었다. 단원고 아이들은 18살이었다. 우리는 왜 이 아이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을까. 세월호가 올라왔다. 하지만 진실은 아직 어둠 속에 있다. 계속 끈질기게 물어야 한다. 왜냐고. 진실에 가닿을 때까지, 우리 곁의 세월호가 사라질 때까지, 억울한 죽음이 더 이상 없을 때까지.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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