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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

등록 2017-02-22 17:58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노무현 정부의 법무부가 차별금지법 입법을 예고한 때가 2007년이었다. 세 번의 대선과 총선이 있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개발주의 시대까지 ‘어쨌든’ 발전을 의미했다. 지금은 오히려 10년이면 ‘헬조선’으로 변하는 시절이긴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갈수록 삶이 나아지기를, 인간의 권리가 확장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본성에 가깝다. 그래도 어딘가를 향해 나아간다는 감각이 무너지면 사람은 ‘멘붕’에 빠진다.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6~2017년 광장이 분노한 이유는 그런 삶의 감각을 거꾸로 돌린 세상과 정권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참여정부 공약

2017년 대선 후보 지지율 1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월13일 개신교 인사들을 만나 “(국가인권위원회법 외에) 동성애나 동성혼을 (인정하기) 위해 추가적 입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고 말했다. “별도로 차별금지법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2007년 당시 문재인 후보는 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장이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참여정부의 공약이었고, 2013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도 공약했다.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는 말은 그래서 심각한 망각으로 비판받는다. 지난 10년 거꾸로 돌아간 시계는 이명박근혜만의 것이 아니었다.

1987년 체제를 논할 필요도 없이, 성소수자는 그들의 세계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보호받지 못하는 시민으로 낙인찍히는 경험이 자꾸만 쌓였다. 2007년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리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국 사회가 어떤 사회인데?’ 살아본 사람으로 모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나마 공약을 지키려고 정권 말기에 시늉이라도 하는 것이 기특했다. 당시 ‘며느리가 남자라니 웬 말이냐?’라는 지독하게 웃픈 구호가 등장했다. 개신교의 반발이 ‘넘사벽’이라는 것은 핑계이기도 했지만 현실이기도 했다.

그래도 살아가는 존재로서 인간은 다음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언젠가’라는 기대마저 없으면 시민으로 열정은커녕 정신도 유지하기 어렵다. 총선이 끝나고 새 국회가 구성될 때마다 관성처럼 새 법안이 발의됐다. 2013년 최원식·김한길 민주통합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 2016년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등은 빗발치는 항의전화에 기다렸다는 듯 ‘스스로’ 철회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인권조례를 스스로 폐기했다. 성소수자는 번번이 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에 호명당해 짓밟혔다.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무서워하는 1천만 성도의 표심이 검증된 적은 없었다. 상상된 공포에 짓눌려 그들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했다. 보호는 못해도 모욕은 주지 말아야 한다는 기본도 지키지 않았다. 누구도 철회를 사과하지 않았다.

검증된 바 없는 기독교 표심

모욕당한 시민들이 정권을 탄핵했다. 이후의 삶이 달라질 것이란 기대가 없으면 광장은 추위를 견딜 희망이 없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함께 선 성소수자의 무지개 깃발은 벌써 와버린 환멸에 떨고 있다. 성소수자 배제를 현실이란 이유로 용인하면, 그 현실은 다음에 당신을 겨냥할 것이다. 장애인, 이주민, 철거민, 그리고 숱한 예상치 못한 이름들. 동성혼 인정도 아니고 차별금지법 제정은 무상급식보다 보편적이고 기본소득보다 급진적이지 않은 의제다. 누구라도 당신이 누구인지 때문에 차별받아선 안 된다는 법이다. 심지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도 한국의 유력 대선 후보들처럼 성소수자 인권을 대하진 않는다. 상상된 공포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넘어서지 않으면, 이 사회는 지금 한발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가 결정할 문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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