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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

등록 2016-11-12 05:27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그날 밤, 신비주의에 빠졌다. 시작은 신천지였다. 매일 버스로 출퇴근길에 경기도 과천을 지난다. 몇 해 전 과천에는 유독 ‘신천지의 교회 침투’를 비판하는 현수막이 나부꼈다. 알고 보니 과천은 신천지의 성지같은 곳이었다. 언젠가 과천의 반지하 주거 취재를 하는데, 취재원을 소개해준 지역 활동가가 그 지역을 증거장막교회 신도들이 집단 이주한 곳이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반지하 독거노인 집에는 유난히 예수·성경 관련 상징물이 많았다. 신천지, 증거장막교회, 유재열, 김종규를 검색해 올라가면 결국엔 20세기 초 평안도에 이르게 된다. 주류 개신교뿐 아니라 신비주의도 여기서 나왔다.

김백문, 박태선 그리고 평안도

한국 개신교 신비주의에는 한국적·동양적 전통이 스며 있다. 유교, 불교, 샤머니즘의 영향이 있는 것이다. ‘동방의 의인’ ‘참아버지’라고 하든 교주가 말씀의 전달자가 되는 교리를 공유한다. 목사를 자처하며 자신을 ‘미륵’이라 치켜세운 최태민의 영세교는 이런 신비주의의 한 분파로 보인다. 1907년 평양대부흥을 검색하면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는 자부심 넘친 단어와 만난다. 분단으로 남하한 개신교에는 주류뿐 아니라 신비주의 분파도 있었다. 이들이 전파한 신비주의 전통은 서울에서 ‘성령의 불길’을 이어간다. 최태민은 황해도 출신이다.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이전에 구국의 개신교가 있었다. 용문산 기도원으로 유명해진 나운몽 목사의 이력에는 이런 것이 있다. ‘1950년대 용문산 기도원에서 구국제단을 쌓고 구국기도를 했다.’ 최태민의 구국선교단보다 훨씬 앞선 ‘구국’이다. 여기에 한민족 선민사상도 깃든다. 나운몽은 한민족의 아브라함 친족설을 내세웠다. 한민족이 선택받은 민족이란 생각은 지금의 개신교에도 퍼져 있다.

신비주의 전통은 역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개발주의에 상처받은 민중에게 아버지가 되었고 치유가 절실한 빈민에게 신유의 위로도 주었다. 38선을 넘어온 성령의 불길은 어찌나 뜨거웠던지 청와대 담장까지 넘었나보다. 최태민을 통해 어머니를 총탄에 잃은 한 사람의 흉금을 파고든 흔적이 보인다. 그들의 관계가 어땠는지 아직 모른다. 다만 기자는 ‘누가 누구를 영적으로 지배하는 관계였다’는 추측에 동의하지 못한다. 최태민 사후에 이들의 관계는 유사 가족과 같았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짐 진 자에게 다가간 달콤한 속삭임은 추문으로 끝났다. “이제 짐을 내려놔라” 외침이 가득하다. 신비주의 혹은 토착화된 개신교는 불행히도 개발주의 시대를 거치며 성공 신화, 강자 논리, 가족이기주의와 결합했다.

여기는 개신교 사회?

한 사회단체 활동가는 “한국은 유교 사회가 아니라 개신교 사회”라고 말한 적 있다. 한국 개신교 역사와 맥락을 이해하면 박근혜 정부 이전 장로 대통령 이명박까지 최근 10년이 조금 더 보인다. 국정 역사 교과서에 ‘환빠’의 기운이 스며도 보수 개신교 정치인들이 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지 이해된다. 최순실이 강남에서 교회를 다니고 독일에서 통일교의 보호를 받았다는 보도가 모순적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박정희의 민주주의는 한국적 민주주의였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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