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1938~2005)의 (눈빛 펴냄, 2003)을 본다. 무심히 책장을 넘기던 손길이 멈춘다. 182쪽 ‘쌍동이’. 서울 중림동 골목길에서 만난 쌍둥이 여자아이와 어머니. 1972년 한여름, 골목길에 매트를 깔고 어머니는 쌍둥이에게 부채질을 해주고 있다. 한 아이는 웃옷을 벗었고, 다른 아이는 입에 ‘공갈꼭지’를 물었다. 두 아이는 카메라를 빤히 응시하고 있다. 4년 뒤 1976년 8월, 훌쩍 큰 쌍둥이는 위아래 똑같은 옷과 신발을 신고 대문에 서 있다. 1982년 8월 두 아이는 나란히 같은 안경을 썼다. 1999년 6월 쌍둥이는 손을 잡은 듯 놓은 듯 어색하게 웃으며 카메라 앞에 다시 서 있다. 2001년 8월 쌍둥이 자매와 어머니는 골목이 재개발로 헐린 뒤 들어선 아파트의 현관 앞에 나란히 섰다.
강재훈 사진집 (눈빛 펴냄)는 고 김기찬의 ‘골목 안 풍경’ 사진집들을 잇는 기록이다. 지은이는 말한다. “도시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함께 호흡하며 있는 그대로 기록한 골목 안 풍경을 평생의 테마로 작업했던 김기찬 선생님. 마치 그분이 마지막 지킴이였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처럼 만리동고개 언저리 골목과 골목으로 연결된 집들이 뭉텅뭉텅 헐려 나가고 그 골목들마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다퉈 골리앗 같은 복합건물이나 오피스텔, 아파트 단지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다.”(작가의 말)
한겨레신문사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는 지은이는 2010년부터 최근까지 출퇴근길과 점심때에 그 골목들을 찾아 걸었다.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 마포구 공덕동, 중구 중림동, 용산구 서계동 일대다. 만리동고개에서 만나고 고갯마루에서 갈라지는 곳들. 지은이가 이름하여 ‘공중만리’로 일컬은 동네다.
사진집에 담긴 풍경을 새겨본다. 금 간 시멘트 담벼락에 쓰인 글씨 ‘영심이’. 골목길에 내놓은 건조대에 널린 빨래들, 그 옆에서 수줍게 카메라를 바라보는 아이들. 뛰어가는 아이, 돌아보는 아이, 그림 그리는 아이. 바닥에 널어놓은 고추며 곡식 등속. 놀란 개나 고양이 무리. 더위를 피해 그늘에 모여 앉거나 홀로 웅크린 노인들. 지나가는 배달 오토바이. 어둑한 가로등. 공사용 가림막마저 찢긴 재개발 현장들, 그 옆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라고 문에 써붙인 글귀, ‘이주 완료’ 또는 ‘출입 단속, 공가’ 문구. 반쯤 무너진 집 뒤로 날카롭게 솟은 아파트. 공중으로 부양할 듯 하늘을 휘젓는 타워크레인들…. “골목을 따라 걸었지만 골목은 거의 없고 재개발에 흔적 없이 사라져간 마지막 소소한 풍경들만 남았다. 비단 이 지역만이 아니리라는 것을 안다. 서울만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작가의 말)
골목은 굽이굽이 흐른다. 길과 길, 집과 집, 사람과 사람을 잇는 유장한 곡선이 마치 삶의 등고선이라는 듯. 그런데 그 골목들은, 거기 분명 ‘있음’으로 존재했던 사람들은 지금 왜 없는가. 왜 있지 않고 없는가. 강재훈의 사진은 묻는다. 그의 사진은 빛과 체온, 그리움과 안타까움으로 인화한 존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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