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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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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처럼 하면 되겠군

평등이 지탱하는 작은 섬 배경으로 한 한창훈 연작소설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등록 2016-07-13 14:58 수정 2020-05-03 04:28

내가 시간이 없으면 시간도 내가 없다. 유한한 삶에서, 그런 식으로 나는 없어져간다. 버림받을까봐 내가 나를 버리는 실수를 한다. 준비에 준비만 하다 가버리는 삶이 허다하다. 정작 행복엔 준비가 필요 없는데.

한창훈의 (한겨레출판 펴냄)는 행복이란 말을 짓지(지어내지) 않아도 될 만큼 복된 삶의 원형을 보여주는 연작소설이다. 지은이의 딸인 한단하씨가 일러스트를 그렸다. 한 섬과 그곳 주민들의 생활로 소설은 시작된다. 이들은 뭔가 많이 쓴다거나 개인이 땅을 소유한다는 개념을 모른다. 범죄와 형벌도 모른다. 주민들은 바다에서 배운다. “바다의 특징은 (…) 똑같이 한다는 것이에요. (…) 어제는 가문비나무 높이만큼 치솟았는데 모든 파도가 그랬어요. 오늘은 보시다시피 똑같이 잔잔해요.” 한창훈은 거문도에 산다. 파도에 둘러싸인 이 예술가 내면에 맺힌 바다의 상이 외면화돼 한창훈만의 문체가 됐다.

그 섬엔 단 한 줄의 법이 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 주민들은 만나면 서로 어깨에 손을 대고 인사한다. ‘누구도 높지 않다’의 같은 말은 ‘누구도 낮지 않다’이다. 평등은 이 섬을 지탱하는 힘. 인간이 그린 모든 유토피아가 평등에 기초했다. 현실은, 유토피아를 꾸리려다 디스토피아가 되기 일쑤였지만.

화산섬이었다. 화산활동이 시작되자 국가는 섬 주민들을 육지의 도시로 이동시킨다. 성공지상주의, 실종된 대화, 말살되는 개성, “남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알지만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지도자의 독재. 섬사람들은 도시라는 소외의 다도해에 갇힌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만나는 장면이다.

유토피아 소설로는 당시 영국 현실을 비판하며 근대를 연 모어의 (1516), 과학기술로 구현될 이상세계를 낙관한 베이컨의 (1627)가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후 쏟아진 디스토피아 소설에는 헉슬리의 (1932), 오웰의 (1949) 등이 들어간다.

디스토피아 소설은 서양사에서 이상향 모델로 제시된 플라톤의 이상국가, 마르크스의 공산사회,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사회의 폐해를 공통적으로 경고한다. 그러니까 디스토피아는 유토피아를 추구하다가, 혹은 추구해서 빚어진 사태다. 이때 추구된 평등은 형식적 평등이었다. 형식적 평등은 인간성을 파괴하기 쉬웠다.

한창훈 소설 속에서 ‘파도처럼 똑같이 한다’는 평등은 실질적 평등이다. 배가 고파 도둑질한 이는 벌을 받기보다 배고파 찾아왔기 때문에 음식을 나눠 받는다. 실질적 평등의 같은 말은 형평이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병인인 불평등을 치유하려는 모든 시도엔 형평의 원리가 들어 있다.

오늘날은 유토피아적 구호만 내건 악성 디스토피아다. 한창훈은 이곳의 급소를 찌른다. 그 구호들은 행복을 사는 데 필요한 조건을 달고 있다. 행복하게 사는 게 아니라 행복을 사야 한다는 조항이다. 소설은 살 수 없는 행복을 이렇게 표현한다. “행복이란 게 실체가 없는 거란 걸 나중에 깨달았어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 그때가 행복했구나’ 정도밖에 없잖아요?”

고대 희랍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에서 사람은 죽을 때까지 행복을 말할 수 없다고 했다. 행복의 실체를 알 수 없거니와, 행복만큼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말도 없다.

석진희 교열팀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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