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가 소개가 되어서야. 잘 알도록 널리 알리는 소개(紹介)를 하겠다면서, 정작 군홧발로 주민들 강제로 내쫓듯 사안의 본질을 흩트려버리는 소개(疏開)를 해온 것은 아닌가. 세대 담론 얘기다.
‘88만원 세대’ ‘잉여 세대’ ‘달관 세대’…. 청년들을 지목한 이 말은 언론을 타고 퍼졌지만, 과연 온당한가. 비참한 이들이 착잡할 정도로 많은 시대. 세대 구분과 피해자 규정은 정당한가. 그렇지 않은 혐의가 있다. ‘청년들이 빠진 청년 세대론’ 말이다.
(세창미디어 펴냄). 이 책의 문제의식이 그러하다. “세대를 박제하는 각종 수사들, 세대 아닌 자들에 의해 쓰이는 세대론은 무의미하다.” “어쩌면 ‘헬조선’이 진짜 ‘헬’인 이유가 바로 여기 있지 않을까? 모두가 지옥 같은 현실에 일조하면서도, 오로지 자기(의 세대)를 피해자로만 기억하는 착각과 오만, 망각의 시대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2013년 젊은 연구자들이 모여 꾸린 인문학협동조합이 기획했다. “앎과 삶의 일치를 모색”하는 게 조합을 만든 목표다. 청년 10명이 10가지 글을 썼다. 비공인중개사부터 적극적 한량까지, 지은이들 소개글도 예사롭지 않다.
책의 기획 의도. “‘헬조선’이나 ‘잉여’, ‘흙수저’와 같이 무수히 많은 신조어들은 자신의 궁핍한 삶의 조건을 ‘공동의 것’으로 사유하기 위한 방법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세대의 경험을 담론화하면서도, 이를 한국적 맥락에서 보편화하기 위한 이론적이면서도 실천적인 의도에서 기획된 것임을 밝혀둔다.”
세 꼭지(‘생활이 문제다’ ‘그래도 논다’ ‘공부도 해봤다’)로 나눠 실은 청년들의 육성을 듣는다. 왜 ‘청춘’ 앞에 ‘흙흙’이라는 꾸밈말이 달라붙었을까. 사회가 한 권의 책이라면, 본문이 아닌 미주·각주로 추방된 문장들과 같은 상황의 목소리에서 ‘깊은 빡침’이 읽힌다.
현실 속 청춘이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부류가 환호받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800원짜리 밥버거를 주식으로 삼거나, 간장계란밥·라면으로 버티며 한 달 식비를 20만원으로 해결하는 삶(‘자취생 렙업기’)은 과연 지속 가능한가. ‘고양이들의 집사’로 살면서 책임감·사치 같은 말을 고민하는 부조리하고 억울한 현실(‘참을 수 없는 존재의 귀여움 vs 무거움’)은 어찌해야 하나. 여러 웹툰에서 다룬 대학의 ‘조별 과제’ 이야기 풍경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 이후 청년 세대에 대한 무수한 논의가 계속해서 이뤄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논의들은 그동안 청년들이 대학사회를 체험하며 계속 생산하고 있는 또래집단의 서사에 대해서는 그동안 이상하리만큼 무관심했다.” 해법은 부분집합(청년)/여집합(청년 아님)이 아닌 전체집합(사람)에 있을 것이다. “청년 문제를 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청년 밖의 사람들과 손을 잡고 공통의 삶의 지반을 만들어가는 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대만이 해법이다.
책 뒤에 따로 ‘흙한사전’을 덧대었다. ‘-배틀’부터 ‘훈장질’까지. 2016년 대한민국 현실을 응축한 낱말 93개가 수런거린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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