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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반 A팀 막내 김군

등록 2016-06-09 16:28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 각 언론사의 기사를 종합해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은성PSD 강북사무소 갑반 A팀의 막내 김군은 5월28일 오후 5시 구의역 5-3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문제가 있다는 신고를 전달받았다. 다른 동료들은 모두 현장으로 나가고 사무실에는 입사 7개월차인 김군과 상황접수 직원 둘뿐이었다. 김군은 혼자 구의역으로 향했다. 가방에 사발면을 챙겼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1시간 규정 6분 전</font></font>

김군이 구의역에 도착한 것은 5시52분. 서울메트로와 맺은 계약서엔 ‘접수 1시간 이내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어기면 ‘배상금을 청구한다’는 규정도 있었다. 구의역으로 들어오던 열차 기관사가 ‘열차가 멈추지 않았는데도 문이 열리고 닫히길 반복한다’는 고장 내용을 관제사령에 보고한 시각이 오후 4시58분. 김군은 ‘1시간’ 규정 6분을 남겨놓고 가까스로 도착에 성공했다.

‘2인 1조’는 불가능했다. 그사이 5시20분쯤 을지로4가역에 또 다른 고장 신고가 들어와 있었다. 1~4호선에 흩어져 있던 직원 5명 중 구의역에서 가장 가까운 동료는 경복궁역에 있었다. 동료가 구의역으로 와서 김군과 함께 수리를 마치고 을지로4가역으로 가려면 경복궁∼구의 34분, 구의∼을지로4가 22분, 이동 소요 시간만 1시간이었다. 그렇게 되면 ‘1시간 이내 도착’ 규정은 지킬 수 없었다. 물론 이것은 가정이다. 혼자 하는 게 애초 이들의 일상이었다. 49개 역 스크린도어 전체를 하청업체 직원 5~6명이 관리해야 했다.

김군은 5시56분 스크린도어를 열었다. 그리고 1분 뒤인 5시57분 들어오는 열차를 미처 피하지 못했다. 역무원은 그가 작업 중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역무원이 모르니 기관사가 알 리 없었다. 잠시 뒤 구조대가 도착했다. 구조대가 스크린도어와 열차 사이에 낀 김군을 구조한 곳은 고장 신고가 들어온 5-3 승강장에서 한참 떨어진 9-4 승강장이었다. 김군은 응급처치 뒤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열아홉의 김군은 왜 오도 가도 못하고 그곳에 낀 채 세상을 떠나야 했나? 필연적으로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단계별로 산재해 있다. ‘2인 1조’ 등 실현 불가능한 ‘탁상 매뉴얼’, 통합적 신고 전달 체계 부재, 유지·관리 비용 절감을 위한 외주화 시스템, 외주업체의 최저가 낙찰제, 저비용 경영에 따른 외주업체의 고질적 인력 부족, 최저가 낙찰제에 따른 졸속 부실 시공으로 인한 스크린도어의 잦은 고장. 거기다 서울메트로 출신 전관 업체와의 하청 거래, 과거 동일 사건의 책임자 처벌 전무, 반복되는 노동자 개인에게 책임 떠넘기기까지.

<font size="4"><font color="#008ABD">4명이 떠나고 나서야 </font></font>

사건의 이면에 놓인 사실을 알수록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감정에 빠진다. 규모와 복잡성에 차이가 있겠으나, 세월호 사건 이후 진실이 하나하나 밝혀질수록 아연하고 불가해한 심정에 빠지던 것과 같은 종류다. 2013년 성수역, 2015년 강남역 사고를 거치며 ‘개인 과실’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던 서울메트로는 4명의 죽음을 낳고 나서야 책임을 인정했다. “고인의 잘못이 아닌 시스템이 원인”이라는 ‘말’이 나온 것은 이런 많은 죽음 이후였다. 공기업 직원을 거쳐 기관사가 될 것을 기대하며 역 사이를 분주히 오가던 은성PSD 강북사무소 갑반 A팀 막내 김OO군의 죽음은 기억돼야 한다.

이로사 현대도시생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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