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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해소? 세금 개혁부터!

토마 피게티가 제안하는 부자에게 세금 많이 걷는 법 <세금혁명>
등록 2016-04-15 16:43 수정 2020-05-03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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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슈퍼부자·대기업 증세’

놀랍게도, 2012년 4월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이 내걸었던 이 공약의 일부는 이듬해 들어선 박근혜 정부에서 현실화됐다. 그러나 극소수를 겨냥한 징벌적 ‘부자 증세’의 소득재분배 효과는 보잘것없었다. 지난 4년 동안 소득불평등은 처참하게 악화됐고 중산층은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불평등에 대한 세계적 논쟁에 불을 붙였던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학 교수는 1%가 아닌 100%로부터 단순하고 공정하게 세금을 걷는 방안을 (글항아리 펴냄)에서 제안하고 있다. 프랑스에선 보다 2년 앞선 2011년에 발간된 이 책에는 이매뉴얼 사에즈 미국 버클리대학 교수, 카미유 랑데 전 미국 스탠퍼드대학 경제정책연구소 연구원도 참여했다.

피케티의 ‘세금개혁 로드맵’은 세금이 복잡하고 불공정하게 부과되고 있다는 문제 인식에서 출발한다. 2010년 한 달에 1천~2천유로(약 131만~262만원·세전 개인 총소득 기준)를 버는 전체 50%의 저소득층은 45%의 실효세율을 부담하고 있다. 100만원을 벌어 45만원을 소득세·소비세·사회보장기여금 등으로 쓴다는 뜻이다. 이들보다 수입이 조금 더 많은 40%의 중소득층은 49%의 실효세율을 감당하느라 소득의 절반을 세금으로 낸다.

반면 상위 0.1% 최고소득층에 부과되는 실효세율은 35%로 뚝 떨어진다. 소득이 커질수록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 ‘누진성’이 크게 훼손된 결과다. 90%의 저소득·중소득층의 수입은 공제 항목이 빤한 노동소득이 거의 전부지만 10%의 고소득층이 집중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자본소득에선 다양한 세제 혜택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의 쏠림→세금의 역진성 강화→소득불평등’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개혁의 목표는 ‘공정한 세금 분배’다. 세금을 늘리냐 줄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방식 또한 명쾌하다. 먼저 ‘동일한 소득에 동일한 세금’ 원칙에 어긋나는 원천징수와 각종 조세감면 제도를 모두 없앤다. 내 소득이 그대로 남는다. 여기에 능력에 맞는 ‘실효세율’(실제 세 부담)로 세금을 물리면 된다. 월소득이 1100유로(약 144만원) 이하 최저소득층은 실효세율 2%만 부담하면 되지만 10만유로(약 1억3133만원) 이상 최고소득층은 60%를 감당해야 한다. 누가 얼마의 세금을 내는지 모두 알 수 있게 된다.

개혁의 결과는 흥미롭다. 개인이 부담하는 평균세율은 47%로 이전과 차이가 없다. 상위 3%의 부유층만 더 많은 세금을 낸다. 반면 중간계층 이하에선 세금이 줄어들고 구매력은 그만큼 상승하는 결과가 나타난다. “우리는 이것이 완벽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우리의 주요 목표는 모든 성향의 시민, 정치활동가, 정치책임자, 노사책임자에게 자신만의 대안적인 개혁을 구상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중략) 세금 없이는 공동의 운명도, 집단 대응할 능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가 밝힌 책의 목적은 세금에 관한 진지한 고민과 논쟁이다. ‘세금 개혁’ 공약 하나 없이 ‘소득불평등 해소’ 구호만 너도나도 외치는 올해 총선이 2012년만도 못한 이유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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