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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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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의 평범성

등록 2015-12-24 21:03 수정 2020-05-03 04:28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지난 12월15일과 16일에 걸쳐 1차 청문회를 진행했다. 청문회에서 해경 책임자들은 구조가 지연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잘 모르겠다”라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사후에 자신에게 돌아올 비판과 처벌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듯 그들은 ‘책임’이라는 말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사유의 무능력”

나는 그들을 보면서 한나 아렌트가 쓴 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 집행자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고 쓴 책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해경 책임자들이 나치 전범과 같은 학살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정신이상의 살인마로 보지 않는다. 아이히만은 상부의 명령을 수행하는 평범한 관료였다. 아렌트에 따르면 그에게는 치명적 무능력이 있었다. “말하기의 무능력, 사유의 무능력,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력”이 그것이다. 이 무능력이 아이히만을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한 자”로 만들었다.

세월호 청문회에 등장한 관료들은 정말이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는 자들”처럼 보였다. 사람들을 태운 배가 물속에 가라앉고 있었다. 자신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촌각을 다투며 사람들의 생명과 직결돼 있었다. 그들은 생명을 구하는 데 실패했다. 그들의 실패는 산 사람들의 무수한 삶을 지옥으로 바꿔버렸다.

청문회에서 그들의 말은 책임을 모면하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생명과 직결된 자신의 일과 그 일의 실패에 대해 사유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 실패가 가져온 재앙을 온몸으로 감수하며 진실을 밝히려는 유가족들 앞에서 그들은 변명하는 데 급급했다. 유가족들은 그들의 말에 비난과 절규로 반응했다.

그런데 청문회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해경과 마찬가지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 하지만 역시 구조에 실패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또한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바로 구조 작업에 참여한 잠수사들이었다. 그중 한 명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는 국민이기 때문에, 제 직업이 가진 기술이 현장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간 것입니다. 저는 애국자나 영웅이 아닙니다. …고위 공무원들에게 묻습니다. 저희는 잊을 수 없고 뼈에 사무칩니다. 그런데 사회지도층인 그분들은 왜 기억이 안 난다고 하는지, 노가다인 저희들보다 훌륭한 분들인데….”

잠수사들은 사건 이후 명령을 따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결정으로 전남 진도 팽목항에 남아 있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물속에 뛰어들고 또 뛰어들었다. 자신들이 희생자 가족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절감했기 때문이다.

청문회에서 잠수사들의 말은 어눌했다. 하지만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나온 말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말은 유가족들의 입장을 고려하고 배려했다. 말을 하는 그들은 울었고 말을 듣는 유가족들도 울었다. 그들이 말을 마치자 유가족들은 큰 박수를 쳤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잠수사들의 말을 들으며 또 다른 책을 떠올렸다. 에바 포겔만이라는 학자가 나치 치하에서 어려움에 처한 타인들을 도와준 사람들을 연구하고 쓴 라는 책이었다. 포겔만에 따르면 그들은 영웅적 희생정신과 신념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말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고 같은 상황이 와도 또 그렇게 할 것이다.”

팽목항의 잠수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에게 선행이란 너무나 평범하면서도 지극히 필연적인 행동이었다. 포겔만이 자신의 책에서 제시한 개념은 바로 ‘선의 평범성’이었다.

심보선 시인·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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