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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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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털리고’ 싶어라

미스터리 팬들을 위한 이벤트
등록 2015-06-20 18:09 수정 2020-05-03 04:28
몽실 카페 주인장인 에델바이스가 적극 추천작이라며 미스터리가 가득 꽂힌 카페 서재에서 책을 꺼내 보이고 있다. 구둘래 기자

몽실 카페 주인장인 에델바이스가 적극 추천작이라며 미스터리가 가득 꽂힌 카페 서재에서 책을 꺼내 보이고 있다. 구둘래 기자

“마니아들의 주머니를 털기가 제일 쉽죠.” 독자 교정 이벤트에 참가한 남극펭귄이 말했다. 참가자 전원이 동의해 자신의 돈이 털린 기억을 ‘즐겁게’ 회상했다. 저녁 자리는 이들이 ‘털린’ 기억을 풀어놓고 ‘어디에 털릴 것인가’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미스터리 팬들은 적극적이다. 서울 관악구 인헌동에서 북카페 ‘카페 몽실’을 운영하는 주연지(닉네임 에델바이스)씨는 스스로 이벤트를 한다. 일주일에 한두 권씩 블로그에 공지하고 원하는 사람에게 책을 나눠준다. 자기가 읽은 책 중 좋은 것을 하나 더 사서 나눠준다. “출판사는 신간이니까 이벤트를 하는 거지만 저는 읽고 좋은 것을 주는 거라 팬들이 믿음직스러워하죠.” 이런 걸 아는 출판사들이 입소문을 믿고 책을 주씨에게 보내기도 하는데 “받으면 꼭 한 권씩 산다”. 처음엔 읽을 책을 살 돈은 벌겠지 하며 카페를 시작했는데 그래서 수익은 ‘똔똔’이다. 그의 책 나눠주기를 따라하는 블로그 이웃도 생겼다.

북로드가 독자 77명에게 나눠준  백지 표지 책과 출간 예정 표지, 그리고 리뷰 미션 완료 독자에게 주는 . 북로드 제공

북로드가 독자 77명에게 나눠준 백지 표지 책과 출간 예정 표지, 그리고 리뷰 미션 완료 독자에게 주는 . 북로드 제공

미스터리 팬들은 진득하다. 미스터리 출판사와 미스터리 독자들이 ‘절친’이 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출판사들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선물을 준비한다. 예를 들어 로드북은 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 7번째 책 출간에 앞서 이런 일들을 벌였다. 77명에게 출간 전인 백지 표지의 책을 나눠주었다. 리뷰를 남기면 을 준다. 은 작가 소개, 시리즈 전편 소개, 타우누스 지도, 십자말풀이, 심리테스트 등을 곁들인 100쪽 분량의 한정판이다. 곳곳에 일러스트를 집어넣었다. 독자들이 환장할 법하다. 예약판매를 신청하면 반양장 책을 감싼 4절 타우누스 지도를 ‘겟’할 수 있다. 이 책을 담당하는 이서하씨는 미스터리의 경우 이벤트 외에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도 많이 한다고 한다. 이번 책의 표지도 3가지 시안 중 많은 표를 얻은 것을 채택했다. 이씨는 미스터리 팬들의 특징을 이렇게 말했다. “용인 폭이 크다. 일반 독자라면 괴기스럽거나 무섭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서도 팬들은 ‘멋있다’고 해준다.”

북스피어가 이스터에그, 띠지 모으기 이벤트를 하고 피니스아프리카에가 색칠공부 표지를 만드는 등 출판계에서 이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이런 팬을 믿기 때문이다. 열광적 지지의 한편에는 어려운 장르문학 출판 사정도 자리잡고 있다. ‘낭만독자 열차교정’ 이벤트를 맨 처음 한 출판사는 세 군데였다. 한 군데는 폐업했다. 피니스아프리카에 박세진 사장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목동만 빼면 서울 시내를 다 아는데 택시기사를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이벤트는 이들의 비명이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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