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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주민의 마을은 어디에…

비혼자, 정주할 집이 없는 사람들이 취약계층이 되는 마을에서 이웃과 만날 접점이 있을까
등록 2014-10-31 15:13 수정 2020-05-03 04:27
호호호비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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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우리는 결핍된 것을 욕망한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 이런 구절을 읽으며 무한 감동을 받는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의 칼럼에 나오는 마을 이야기를 읽고 ‘그래 이렇게 살아야지’ 다짐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나의 현실은, 경기도 안양시 비산동에서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으로 편도 1시간20분을 출퇴근해야 하는 직장인이다. 서울 사당동에 살다가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안양으로 이사한 지 어느덧 15년, 비산동에서 그토록 숱한 밤을 보냈지만, 여전히 낮의 안양은 낯설다. 이런 삶터와 일터의 분리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마을 사업 이름엔 ‘아이’ ‘부모’

“서울이 세계에서 가장 노동시간이 긴 도시라는 점입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4분의 1가량이 2년 내에 집을 옮긴다고 그래요. 그래서 5년, 10년이면 마을 전체가 물갈이되는데 마을을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졌는데 답이 없어요.”( 중 김상철 노동당 서울시당 사무처장)

집으로 가는 심야버스, 서울시 마을만들기 정책을 홍보하는 광고가 들린다. 역시나 세입자로, 정주할 집이 없는 사람은 ‘나의 마을은 어디인가?’ 떠올린다. 활동시간 대부분을 보내는 서울 공덕동 주민인가, 주민등록증이 보증하는 안양 시민인가, 몇 해 전까지 주말 밤이면 밤마다 마실을 나갔던 서울 이태원 사람인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무소속 주민은 버스 창가에 기대 ‘마을에 친구가 있으면 이렇게 외롭진 않겠지’ 생각한다.

“성인 남성은 아버지로, 성인 여성은 어머니로 그리고 아이들은 무성적인 존재로 좋은 밥과 간식거리를 제공받는 것만이 가장 중요하게 상상되는 것은 아닌지.”( 중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활동가)

나는 마을이 무섭다. 지방 중소도시에서 서울로 이주한 뒤 비로소 자유를 얻었다. 서로가 서로를 아는 도시를 떠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럽다. 익명성이 가득한 도시의 공기는 40대가 돼서도 여전히 목숨 같다. 아는 사람이 없는 곳이 더욱 안전한 사람도 있는 법이다. 마을 사람이 되려고 해도 40대 비혼 남성이 이웃과 만날 접점이 있을까? “결혼은 안 하세요?” 같은 질문에 시달릴 것이다.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는 상황을 상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마을의 주민이 되려면,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할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런 비혼자는 마을공동체의 취약계층이다. 마을공동체 활동 현황을 종합한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의 지도에 나오는 사업 이름만 봐도 핵심은 ‘아이’ ‘부모’ 등이다.

“제가 걱정되는 건 이렇게 마을을 이야기할 때 ‘다름을 아우르는 공동체’가 아니라 ‘우리들만의 마을’을 꿈꾼다는 것입니다. 사실 동성애자들도 동성애자들끼리 모여 사는 마을을 꿈꾸곤 하거든요. 저는 이런 마을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서로가 모두 같기 때문에 눈치 볼 일이 없는 마을이 아니라 서로가 다 달라도 그것 때문에 눈치 볼 일이 없는 마을이 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중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활동가)

현실의 마을은 불화하는 장소

‘마을만들기 사업에 던지는 질문’이라는 부제를 단 는 다양한 분야의 지역·인권 활동가들이 모여 토론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여기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을 꼽으라면, 충북 청주 ‘생활공동체 공룡’의 주방장인 박영길씨가 한 말이다. “우리는 성미산이 아닙니다. 파전 하나를 부쳐 먹으면서도 싸움이 나요.” 서울시가 마을공동체의 모범으로 꼽는 성미산 마을처럼, 아름다운 마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의 마을은 불화하는 장소다. 게다가 성소수자가 아니라도 마을에서 삭제된 존재는 많다. 불안정 노동에 지친 이들은 휴일에 쉬기 위해서 집 밖에 잘 나오지 않는다. 더구나 이들의 거주 공간은 외곽의 외곽에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공론장에서 지워지기 십상인 계층이다.

“마을에 아무리 좋은 말을 갖다 붙여도 지금의 마을은 불안하다. 이웃끼리 얼굴 알고 수다 떨며 잔치도 열고, 참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건 서로의 관계가 좋을 때이다. 서로 생각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충돌한다고 느끼는 순간 그 얼굴과 수다와 잔치는 고통으로 변한다.”( 중 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그래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마을만들기 사업에 오히려 주목했을 것이다. 서울시는 2014년 9월, 654개 마을공동체 사업에 133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주민이 마을공동체 사업 계획서를 내면 심사를 통해 지원이 결정되고, 사업의 진행을 돕는 과정이 이어진다. 뉴타운 개발보다 마을공동체 사업이 물론 낫다. 그러나 과연 마을 ‘만들기’가 가능한가? 마을공동체 ‘사업’은 바람직한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도 적잖다.

“결국 (서울)시에서 시장이 생각하는 마을 이미지를 이식시켜주는 꼴이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마을 ‘만들기’라는 것 자체가 인위적인 거잖아요. 마을은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인데, 그냥 그런 생각들을 하는 것 같습니다.”( 중 권단 ‘옥천살림’ 활동가)

“박원순 시장이 되자마자 서울에 있는 지역활동가 그룹들 몇 군데서 ‘공룡’으로 내려왔어요. 우리 지역에 와서 사진도 찍어가고 아이디어도 모으고 이야기도 듣고 싶다고 오더군요. 하지만 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렇게 가다가 쫄딱 망한다고 얘기했어요. 그나마 오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마을 만들기가 근근이 유지되고 그러면서 거품도 좀 빠지고 실제의 모습들이 이제 막 드러나고 있는데, 그렇게 돈을 확 풀어버리면 그마저 깨져버린다고. 위험한 도박이라고. 그래도 계속 와요. 두세 달 전부터는 도시농업 팀이 오더라고요.”( 중 박영길 청주 ‘생활공동체 공룡’ 활동가)

“행정이 마을화돼야 한다”

김상철 노동당 서울시 사무처장은 “자기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서 뭔가를 얻고자 하는 욕망”이 마을공동체 사업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정된 지원사업을 놓고 지역단체들이 갈등하는 경우도 있다. 김상철 사무처장은 “재원이 큰 통에 물처럼 담겨 있어서 필요한 이들이 알아서 떠 먹어야 한다”며 “재원을 관이 배분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민이 토론하고 논의해서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실제 동네 사정에 밝지 않다”며 “행정이 마을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을만들기 사업이 말하지 않는 이면도 있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은 “도시 빈민을 위한 공공주택 재개발 문제가 박원순 시정에서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을에 눈길이 쏠리는 사이 공공성의 필수적 측면이 잊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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