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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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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것이 진리일 리는 없다”

죄르지 루카치·에르네스트 만델 등
<뉴레프트리뷰>가 인터뷰한 16명의 좌파들, <좌파로 살다>
등록 2014-03-08 15:36 수정 2020-05-03 04:27
〈좌파로 살다〉에는 문제적 좌파 16인의 삶과 실천이 담겼다. 마르크스주의 문예이론가 죄르지 루카치(왼쪽)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에르네스트 만델.한겨레 자료

〈좌파로 살다〉에는 문제적 좌파 16인의 삶과 실천이 담겼다. 마르크스주의 문예이론가 죄르지 루카치(왼쪽)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에르네스트 만델.한겨레 자료

1917년 10월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사회주의혁명이 일어난 지 이제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가 ‘좌파’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생각과 궤적을 하나의 줄기로 엮어보려 한다면,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20세기는 에릭 홉스봄이 ‘극단의 시대’라고 부를 정도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 세계 곳곳의 반제국주의 투쟁,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신자유주의 세계화 등을 거대한 용광로처럼 머금은 시대다. 이 속에서 광활하고도 다변하게 갈라지고 때론 합쳐지며 흘렀던 좌파의 물줄기를 과연 어떤 방식으로 따라가볼 수 있을까?

좌파 내부에서 끊임없이 비판해온 이들

영국의 ‘신좌파’를 대표하는 잡지 가 2011년에 내놓은 (유강은 옮김, 사계절 펴냄)는 좌파의 역사를 하나의 줄기로 정리하는 데 모범적 사례를 제공하는 책이다. 는 1960년 소련식 현실사회주의와 서구의 사회민주주의에 모두 반발하며 스스로를 ‘신좌파’라고 생각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만든 잡지다. 최근 작고한 문화이론가 스튜어트 홀, 레이먼드 윌리엄스, 역사가 에드워드 파머 톰슨 등이 주축이 됐다. 이 잡지는 1968년 헝가리 출신 마르크스주의 문예이론가 죄르지 루카치와 인터뷰한 것을 시작으로 50년 가까이 ‘문제적 인간’들을 만나 심층적인 인터뷰를 해왔고, 이는 잡지 구성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발전했다.

는 가 그동안 해온 인터뷰 가운데 16명에 대한 인터뷰를 골라내 엮은 책이다. 이들이 골라낸 인터뷰이의 면면을 보면, 죄르지 루카치를 시작으로 소련의 중앙집권적 행태를 비난했던 정치가 칼 코르쉬의 부인 헤다 코르쉬, 뛰어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에르네스트 만델, ‘프라하의 봄’을 주도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정치가 이르시 펠리칸, 인도 공산주의운동의 핵심 인물인 다모다란,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인 데이비드 하비, 브라질 토지점거운동의 주역인 주앙 페드루 스테딜레, 중국의 대표적 신좌파 지식인 왕후이, 전후 일본의 좌파이론 혁신가 아사다 아키라 등이 있다.

무엇보다 왜 이들을 골랐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활동했던 시대, 지역과 영역, 사상의 좌표와 정치적 입장 등이 모두 제각각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에게는 좌파 내부에서 새로운 개념과 구상을 통해 끊임없이 ‘비판’의 영역을 확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칼 코르쉬는 일찍부터 중앙집권적인 코민테른에 반대했고, 이르시 펠리칸은 동유럽에서 자생적인 사회주의혁명의 완성이 이뤄지길 바랐다. 다모다란은 인도공산당이 케랄라에서 집권하는 등 성과를 냈지만 분파주의로 한계를 드러냈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왕후이는 서구의 지적 전통으론 풀이되지 않는 중국 지식인의 독특한 좌표에 천착했다.

좋은 삶 위해 극복할 대상 있는 한

이들의 목소리를 죽 이어보면, 신자유주의 광풍 속에서도 자본주의에 굴복하지 않은 좌파의 오늘날로 이어진다. 좋은 삶을 이루기 위해 극복해야 할 대상이 있는 이상, 좌파로 살아가는 사람 역시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설을 맡은 장석준 노동당 부대표는 에른스트 블로흐의 명제를 인용해 이 인터뷰들이 향하는 지점을 압축해 설명한다. “현존하는 것이 진리일 리는 없다.”

최원형 오피니언부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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