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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으로 가기 위한 ‘크로스’

2011년 겨울아시안게임 크로스컨트리 여자 10km 프리스타일 금메달리스트 이채원
악바리 연습벌레의 도전은 계속된다
등록 2014-02-12 15:08 수정 2020-05-03 04:27
스키 크로스컨트리 국가대표팀 이채원 선수가 31일 오전 강원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 경기장에서 오전 훈련을 하고 있다. 평창/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스키 크로스컨트리 국가대표팀 이채원 선수가 31일 오전 강원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 경기장에서 오전 훈련을 하고 있다. 평창/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정신없이 눈길을 헤치며 달리고 있었다. 그때 김대영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1등이야. 네 인생을 걸고 달려!” 그는 귀를 의심했다. 그때 또다시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누나 지금 1등이야!” 대표팀 후배였다. 그제야 꿈이 아니라 생시인 걸 알았다. 죽을 힘을 다했다. 마침내 골인.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엉엉 울었다. 기대도, 예상도 못했던 뜻밖의 금메달에 그는 오열했다. 이 장면은 온 국민의 마음을 울렸다.

전국체전 통틀어 최다 금메달 주인공

벌써 3년이 흘렀지만 이채원(34)은 그날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2011년 2월2일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겨울아시안게임 크로스컨트리 여자 10km 프리스타일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우리나라 크로스컨트리 역사상 최초의 쾌거였다.

크로스컨트리 불모지인 한국에서 이채원은 언제나 ‘홍일점’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을 코앞에 둔 2006년 1월이었다. 크로스컨트리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는 가냘픈 체구(키 153cm, 몸무게 48kg)에 놀랐다. 스키플레이트를 세우니 자신의 키보다 훨씬 길다. 크로스컨트리는 ‘설원의 마라톤’으로 불릴 만큼 엄청난 체력과 강한 인내력을 요구한다. 레이스가 끝나고 나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이 밀려온다. 체격과 체력이 월등한 북유럽 선수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종목이다. “유럽 선수들이 한 발짝 갈 때 나는 두 발짝을 떼야 한다”고 했다.

이채원의 고향은 강원도 평창이다. 4남2녀 중 막내로 어린 시절 언니·오빠들과 눈밭에서 나뒹굴며 자랐다. 그가 러시아 소치에서 겨울올림픽에 네 번째 도전장을 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에 처음 출전했던 22살 꽃다운 대학생은 이제 30대 중반의 ‘아이 엄마’가 됐다. 그는 여름·겨울 전국체전을 통틀어 최다 금메달의 주인공이다. 고교 1학년 때부터 지난해까지 17년 동안 금메달 51개를 목에 걸었다. 한번 나갈 때마다 평균 3개씩 금메달을 딴 셈이다. 2008년과 2010년에는 대회 최우수선수(MVP)에도 선정됐다. 하지만 세계와의 격차는 크다. 그는 올림픽에 나갈 때마다 “30위 안에 드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지난 세 번의 올림픽에서 54위(2010년 밴쿠버 대회 여자 10km 프리스타일)가 최고 성적이다.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은 악바리 근성이다. 딸을 낳기 한 달 전까지 평소와 다름없이 훈련을 소화했다. 대표팀 강성태 감독은 “갑자기 운동을 쉰다기에 이유를 물었더니 임신이라고 했다. 한 달 뒤 아이를 낳고 3개월 만에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에게 훈련을 가장 많이 쉰 기간을 묻자 “산후조리 기간을 빼면 가장 많이 쉰 게 신혼여행 갔을 때”라는 답이 돌아온다.

4년 뒤 고향 평창올림픽 출전이 꿈

이채원의 꿈은 4년 뒤 고향 평창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다. 그때 나이는 38살. 하지만 ‘작은 철인’ 이채원이기에 가능해 보인다. 그의 아름다운 도전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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