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은 내용을 낳는다.
형식은 확고하되 내용은 비어 있다, 그러면 확산의 힘을 얻는다. 우리의 욕망은 비어 있는 곳을 내가 채우기를 원한다. 그래야 쾌락이 생긴다. 물론 형식을 차용하기, 따라하기 쉬워야 한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의 말처럼 지금은 “정동(effect)의 시대”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코드가 있으면 폭발적인 확산이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합리적 기획보다 우연적 조우가 대중과 만난다.
일비스와 크레용팝의 컬래버레이션2013년 11월29일, 홍콩에서 열린 2013 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 ‘MAMA’에서 여우 분장을 한 두 명의 서양 청년이 나왔다. “Dog goes woof, Cat goes meow.” 번역하면 “강아지는 멍멍, 고양이는 야옹”이 되겠다. 이런 가사의 노래를 하다가 묻는다. “What does the fox say?”(여우는 어떻게 울지?). 그리고 이어진 괴성에 가까운 후렴구. “링-딩-딩-딩-딩디딩딩딩딩” “와-파-파-파-파-파-파우” “야-차-차-차-차우”. 여우 울음소리를 흉내 낸 다양한 괴성들이다. 사실 여우가 우는지 늑대가 우는지 중요하지 않다. 이날 공연을 보던 걸그룹 ‘에이핑크’의 정은지가 따라하듯이, 모두가 즐거워하면 그만이다. 훅송은 이제 괴성으로 진화했다.
이번에는 거대한 여우 캐릭터 앞에서 크레용팝이 를 부른다. 2013년 한국을 압도한 후렴구의 시작을 알리는 “Get, Set, Ready”(겟, 셋, 레디)가 나오자 여우 분장을 한 두 명이 다시 무대로 뛰어나온다. 그리고 “점핑 예, 점핑 예, 에브리바디”(Jumping Yeh Jumping Yeh Everybody)가 시작되자 함께 춤을 춘다. ‘직열 5기통 춤’이라 불리는, 무릎을 굽혔다 뛰어올랐다 하는 동작을 크레용팝과 함께한다. 외국에서, 국내에서 ‘병맛’스러운 노래로 2013년을 장식한 두 그룹의 컬래버레이션(공동작업). 알다시피, 도 ‘하이바’를 쓰고 나오는 걸그룹치고는 파격적인 의상에 조금 유치하지만 중독성 강한 후렴구로 열풍을 일으켰다.
고양이 울음을 가장한 괴성을 지르던 이들은 노르웨이 출신의 일비스(YLVIS), 노래는 (The Fox·What Does The Fox Say?). 어떤 네티즌들은 발음대로 ‘와떠빡세’ 노래라고 부른다. 온갖 동물 분장을 한 이들이 나오는 뮤직비디오는 유튜브를 통해 확산됐다. 2013년 9월, 유튜브 동영상을 올린 지 6일 만에 1300만 뷰를 기록하며 열풍은 세계로 확산됐다. 여기서 생각나는 의 선배, 싸이의 처럼 말이다. 마음대로 괴성을 지르는 단순한 구성은 역시 처럼 패러디를 양산했다. 세계의 클럽을 장악하고, 온라인에 패러디 영상이 넘쳐났다. 한국에서도 <snl>에서 ‘구미호는 어떻게 울지?’로 패러디됐다. 단순하되 신선하고 흥겨운 노래들, 그런데 만이 아니다. 지난해 세계를 강타한 “꼴로 세뇨리따~”로 시작되는 노래 바우어(Baauer)의 (Harlem Shake)도 있다.
“병맛인데 점점 멋있다”
“꼴로 세뇨리따”로 들리지만 사실은 “Con los terroristas”(테러범들과 함께)라는 뜻이다. 이 노래도 가사가 없다. 거의 없다시피 한다. “Do The harlem shake”(할렘 셰이크 하자)라고 하면 엉덩이를 마구마구 흔드는 ‘더티 댄스’를 추다가 잠깐 “꾸루루루” 하면 멈췄다 다시 더 심하게 흔든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집에서, 온갖 장소에서 이 노래를 패러디한 동영상이 올라왔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더 심하게 ‘할렘 셰이크’ 하는 것이다. 이제는 패러디 영상이 너무 많아서 유튜브에서 오리지널 뮤직비디오를 찾기 쉽지 않다. 이 노래의 패러디 영상이 너무 많이, 너무 높은 배열 순위에 올라와 있어서다. 패러디가 어느 정도냐면, 가면을 쓰고 아프리카 민속음악에 맞춰 예전에 추던 축제의 춤처럼, 가 미국 일부 흑인교회에서 영적 체험을 위한 음악으로 쓰이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 밖에도 심심하면 미국 빌보드 차트에 낯선 이름들이 상위권에 올라오는데, 상당수가 패러디하기 좋은 노래들이다. 후렴구는 원없이 반복되고, 언어는 낯설수록 좋다. 미국인들에게 외계어로 들릴 법한 “오빤 강남스타일” 같은 가사, 여우의 울음소리를 빌린 괴성은 그래서 포인트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일수록 위력을 지닌다. 이국적인 언어는 신선하다. 글로벌 시대에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말이 세계어가 된다.
과하게 말하면, 개인이 하는 상호 참조성에 기반한 문화적 융합이다. 이택광 교수는 “과거에 공동체, 민족 단위에서 이뤄졌던 일들을 이제는 개인이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인이 문화적 창작을 하는 기술적 기반이 발전했고 전파의 요건이 좋아지면서 변용 가능한 것들의 확산 속도가 빨라졌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정동의 시대에는 합리성이 아니라 정서적인 것이 호소력을 발휘한다. 따라하고 비틀고 채우면서 참여자는 쾌락을 느낀다. 그러나 이것이 발생하는 방식이 합리적 기획과는 거리가 있다. 처럼 한국인 들으라고 만든 노래가 뜻밖의 세계에서 터지는 것처럼, 우연한 조우가 힘을 발휘한다. 이런 우연한 조우가 사건으로 진화할 가능성도 커졌다.
“텍스트 유머 아니라 짤방의 유머”
‘안녕들’ 열풍도 통하는 면이 있다. 당초 고려대 학생들 보라고 쓴 대자보가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확산됐다. 여기에 나의 온기를 불어넣을 여지를 남겨놓은 형식도 중요했다. ‘안녕들’ 내용과 형식은 완료형 선언이 아니라 열린 질문이었다. 그래서 누구도 안녕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담을 여지가 생겼다. 트위터 글이 나의 견해를 더해 리트위트, 리트위트되듯이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도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퍼졌다. 차우진 평론가는 “유전자 복제와 같은 방식”이라며 “안녕들 최초의 유전자가 복제되면서 개체군이 형성됐다”고 표현했다.
엔터테인먼트가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리얼리티 예능을 생활화한 세대가 있다. 아이들은 동네에서 ‘런닝맨’ 놀이를 하고, 대학생들은 MT에서 ‘1박2일’ 콘셉트를 차용한다. 여기에 사진과 영상과 문자가 결합되는 방식이 인터넷에서는 가능하다. 공감각적 방식인 것이다. 디시인사이드에서 시작된 엽기·병맛 유머는 진화했고 여전하다. 이런 조건들이 결합하면 폭발적인 확산으로 이어진다. 설득의 힘이 아니라 정동의 힘이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안녕들’ 대자보도 나의 논리를 담기보다는 나의 심정을 담는 것에 가깝다.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일베도 일베만의 ‘어법’을 형성하고 제시해 성공했다. 변용이 가능한 일베식 어법이 있으니 나만의 언어를 운용하며 재미를 느끼는 이들이 있다.
“즐거움 코드 시대 분위기와 충돌”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이 드는 영화와 드라마에 견줘 노래 한 곡은 소비하기 쉽다. 그만큼 확산이 쉽고 패러디도 양산된다. 이런 면에서 확산의 선도자 구실을 한다. 이제 은 싸이의 이 아니다. 숱한 패러디 영상을 만든 세계의 학생들, 간호사, 경찰관 등 모두의 이다. 2013년의 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누가 흥미로운 형식을 개발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물론 이런 시대에 제동을 거는 사람도 있다. 이택광 교수는 “즐거움의 코드가 시대 분위기와 충돌하는데, 정권이 어마어마한 브레이크를 걸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충돌에서 ‘안녕들’은 나왔는지 모른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s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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