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잔치는 아직 시작도 못해봤다.
“정신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약해서 상처받기 쉬워. 굳이 남들보다 열심히 살 이유를 못 느끼지. 멋지지 않니? 부양해야 할 가족도 없고, 미래에 대한 기대도 없어. 나랑 비슷한 것 같아.” - 중 김꽃비의 대사
최근 개봉한 여성 성장영화 와 는 매우 미성숙한 자아를 지닌 주인공이 등장한다. 의 진영은 시나리오작가로 의붓동생 집에 얹혀산다. 그는 모태솔로로 동생이 집에 들인 여성에게 사랑을 느낀다. 영화는 감독의 단편 의 연장선상에 있다. 에서 조숙한 초등생 진영이는 엄마가 데려온 여성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엄마와 그녀가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한 뒤 어린 초등생으로 돌아간다. 자아의 후퇴 혹은 순진함의 가장이다. 는 이러한 퇴행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학습지 교사이기도 한 진영은 그가 가르치는 초등생들과 눈높이가 같다. 동성애적 욕망 앞의 서른 살 진영은 초등생 진영과 차이가 없다. 는 연애가 스펙이자 강박이 되어버린 시대에 무력감을 느끼는 여성들을 그린다. 이들이 연애를 못하는 이유는 성적 억압 때문이 아니라, 미성숙한 자아 때문이다. 이들은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는 모태솔로이거나, 곧 결혼할 이성 친구를 짝사랑하거나, 헤어진 남자친구를 5년간 못 잊거나, 가벼운 만남만 갖고 진지한 관계는 기피하는 식이다.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모두 실연의 제스처를 취하지만, 진짜 연애는 아직 시작도 못했다!
가부장제·순결 이데올로기와 대결 안 해와 가 보여주는 미숙한 여성들은 징후적이다. 어린 시절 조숙하고 냉소적인 자아를 지녔으나, 최초의 부딪힘 이후 퇴행한 뒤 미숙함을 유지하거나 가장하며 산다. 이들은 연애를 스펙처럼 갖고 싶지만,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연애를 미룬다. 이들은 부모와의 정면 대결은 회피하고, 사회와의 대결은 꿈도 꾸지 않는다.
이상한 기운은 퀴어 여성 성장영화 에서부터 감지됐다. 뭐가 이상하냐고? 이전 영화들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뚜렷하다. 1990년대 초·중반의 는 사회적 존재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들을 그렸다. 그들은 연애나 결혼에 대한 환상을 지우고 커리어우먼으로 거듭난다. 이 영화들은 여성의 사회 진출을 강조하던 1세대 자유주의 페미니즘운동의 정신과 닿아 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에 나온 는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강조한다. 이들은 내면화된 순결 이데올로기를 벗어버리고 성적 해방을 누리는 주체로 성장한다. 이 영화들은 섹슈얼리티를 화두로 삼던 2세대 급진주의 페미니즘과 닿는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 이후 여성 성장영화들은 ‘페미니즘의 여전사’를 담지 않는다. 가령 의 마지막 장면은 미혼모가 된 채시라가 큰 배를 앞세우며 회사에 ‘출근투쟁’하는 것이었고, 의 결말은 미혼모가 되겠다는 엄정화에게 장진영이 같이 애를 키우자고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에서 김꽃비는 “세 살까지 내 젖 먹여 키우고, 애아빠한테 보내야지” 하고 말한다. 결혼해서 가부장제에 편입되고픈 욕망도 없지만, 그것과 정면으로 싸우겠단 마음도 없다. 는 ‘왕따’인 여교사가 이성애를 갈구하며 벌이는 소동을 보여주다, 결국 ‘왕따’ 소녀와 환상의 짝이 되는 황당한 결말을 보여준다. 진정한 연애소수자들끼리의 결합을 통해, 이성애 커플주의를 비웃으며 달아나는 전복적인 결말이다. 에서 신민아는 서울에서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으로 모친상을 치르러 고향에 왔다가 평생 의문이던 아버지를 찾아 의붓언니와 여행을 떠난다. 그는 미혼모가 되어 후지게 살고 있는 의붓언니를 경멸해왔지만, 여행 도중 자신만 몰랐던 가족의 진실과 마주한다. 영화는 신민아의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자존심을 헛된 것으로, 사회적 잣대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가족의 삶을 진실한 것으로 대비시킨다. 1990년대 영화들이 여성의 사회적 성취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반대보다 포기 혹은 거부의 의미최근 연애·결혼·취업·출산 등 사회적 요구로부터 달아나 여성들끼리 친밀감을 나누는 자족적 공동체를 꿈꾸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진영과 앵두처럼, 경험을 유보한 채 시뮬레이션만 해대는 ‘애완의 자식들’이 속해 있다. ‘서른, 잔치는 아직 시작도 못해본’ 이들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이중 구속하에서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선호합니다”라고 말하는 ‘바틀비’적 탈주체도 포함돼 있다. 어느 쪽이든, 그 어떤 강고한 반대보다 이들의 포기 혹은 거부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지속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그런 까닭에 사회적 레즈비어니즘은 전복의 뇌관이다.
황진미 영화평론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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