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렷다.”
봉두난발을 한 이에게 사또가 호통을 친다. 죄인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곤장뿐. 매에 장사 없다고 형틀에 포박된 이는 초죽음이 되도록 문초를 당한 뒤에야 죄를 자인한다. 사극의 익숙한 한 장면. 과 같은 사극이 있었지만, 조선시대 수사 기법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는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실제 사건 바탕, 알기 쉽게 설명
정명섭·최혁곤의 (황금가지 펴냄)은, 용의자를 무작정 잡아다가 치도곤을 놓는 것으로 여겨진 조선시대에도 과학적인 기법과 추리로 범인을 잡아내는 명탐정들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사건의 정황을 보고로만 듣고도 진실을 파헤친 세종대왕, 절대권력자의 보호 아래 탈법적 존재로서 지위를 남용하며 살인을 저지른 자를 끝까지 추적한 이휘와 박처륜, 희대의 폭군이었으나 비상한 머리로 사건을 꿰뚫어본 연산군, 정조의 명에 따라 미해결 사건 91건을 조사한 정약용 등이 바로 그들. 조선시대에 실제 벌어진 사건과 이를 끝까지 추리해낸 16명의 명탐정을 소개하는 이 책은, 소설로 재구성한 사건의 도입부, 당시 시대상과 역사적 전후 이야기를 상세히 설명한 본문, 그리고 비슷한 외국 명탐정들을 비교한 부록으로 구성돼 소설적 재미와 역사서를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등 역사 논픽션을 비롯해 역사소설을 집필했던 저자들은, 등 참고문헌을 토대로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사건 정황, 추리 방식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책에는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여러 사건들이 등장한다. 이슬람권에서 가문의 명예를 위해 자신의 친족 여성을 살해하는 ‘명예살인’은, 교조화된 유교이념으로 직조된 조선시대에도 빈번했다. 정조는 소박맞고 돌아온 여동생을 물에 빠뜨려 살해한 혐의를 받은 남자의 사건을 추리하고, 연산군 시절에는 첩의 간통 사실을 알게 된 친딸이 결국 그 첩에게 죽임을 당했음에도 첩의 뱃속에 있는 아이 때문에 딸의 살인자를 두둔했던 양반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한 빚을 제때 갚지 않으면, 죽기 직전의 노인을 문 앞에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한 뒤, 그 죄를 채무자에게 덮어씌워 돈을 받아내거나, 남편의 복수를 한다며 무고한 이를 살해하고서도 오히려 의녀가 된 부인의 이야기는 충효를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았던 조선시대의 역설을 느끼게 한다.
조선 최고의 명탐정은 누구일까?명탐정들은 이 사건들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타살로 추측되는 주검은 기본적으로 세 차례 검시를 했다. 타살일 경우 법의학서인 을 토대로 꼼꼼하게 사건 정황을 추리했다. 이 방법으로 살해 도구나 사망 시간 등을 찾아내는가 하면, 심지어 익사자가 익사 전에 살해당한 뒤 물에 빠졌는지, 목매 자살한 이가 죽임당한 뒤 위장되었는지 등도 파악했다. 때로는 용의자의 심리를 간파하고 압박하는 수단으로 범죄자를 잡기도 했으며, 마치 현대의 강력계 형사들처럼 다른 사건의 범죄자를 탐문해 진범을 잡아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저자들이 꼽은 조선 최고의 명탐정은 누구일까? 천재적인 두뇌로 범인을 찾아낸 조선의 셜록 홈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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