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에어컨과 냉장고가 멈춘 날

‘전기 없이 살아보기’ 도전 실패기…
우리의 하루가 덜 반짝이겠지만,
더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등록 2013-07-03 16:07 수정 2020-05-03 04:27
서울 중부 지방에 폭염경보가 내린 1일 낮 서울 마포의 한 아파트 단지내 느티나무 그늘 아래 노인들이 평상에 앉아 선풍기를 틀어놓고 더위를 식히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서울 중부 지방에 폭염경보가 내린 1일 낮 서울 마포의 한 아파트 단지내 느티나무 그늘 아래 노인들이 평상에 앉아 선풍기를 틀어놓고 더위를 식히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전기를 쓰지 않고 여름을 나는 것은 가능할까. 만성 전력 수급 위기는 올해도 마찬가지다. 때이른 더위로 예 비 전력이 급감해 한국전력거래소는 6월에만 12차례 전 력 수급 경보를 예보했다. 서늘한 바람을 내뿜던 에어컨 과 선풍기가 어느 순간 멈춰버린다면, 냉장고가 작동을 그만둬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2003년 미국 동부, 2005 년 오스트레일리아 동남부, 2006년 일본 도쿄의 23개 구, 2008년 5월 영국 전역, 2009년 브라질 등지에서 대 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한 적이 있다. 전력 수급 능력과 상관없이 우리 머리 위의 전등은 위기 상황이 닥치면 급 작스레 꺼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력 수급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전체 전력 소비량의 53%를 차지하는 산업체 때문이라고 하지만 일상적으로 전기를 쓰는 평범한 이 들의 작은 노력도 전력난을 해소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 다. 무엇보다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의지해 만들어지는 전기 발생을 줄이면 우리의 밤은 좀 덜 반짝이겠지만, 더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두꺼비집 스위치 내린 뒤 10분 만에

6월25일 퇴근길 집에 들어오면서 두꺼비집 스위치를 내렸다. 사람 없는 빈집에서도 꾸준히 돌아가던 전기계 량기가 멈췄다. 계획은 이랬다. 전기를 쓰지 않고 하루를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대안에너지를 쓰며 생활하는 사 람들, 무전력 기술 등을 연구하며 최대한 전력을 사용하 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노하우를 얻는다면 도시에서 전 기 없이 생활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자립하는 삶 을 만드는 적정기술센터’ 인터넷 카페 운영자 이재열씨는 이 무대책 계획에 대해 “그저 견디는 것일 뿐”이라고 지 적했다. 그랬다. 이내 집안 전체에 전기를 끊는 것은 무리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둠을 더듬어 냉장고로 걸어가 물 을 꺼내는데 아차 싶었다. 이 많은 냉장·냉동 식품을 어 떻게 할 것인가. 시커멓게 서 있는 냉장고 앞에서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두꺼비집 스위치를 다시 올렸다. 냉장고는 돌리자. 전기 없이 하루 살기는 이렇게 10분도 채 되지 못해 허망하게 무너졌다.

“도시에서 전기 없는 삶이 가능할까요?” 강원도 홍천에 사는 번역가 최성현씨에게 물었다. 최씨는 부모님이 계시는 홍천으로 옮겨오기 전 20년 동안 충북 제천 천등산에 살면서 TV와 냉장고 없이 지냈다. “서울에 있는 빌딩을 부수고 나무를 심으면 되지요.”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매일경제신문사)를 쓴 조안나 얘로에 따W르면, 건물 주변의 나무 그늘은 실내 온도를 11℃ 정도 낮추는 효과가 있다. 도시의 빽빽한 빌딩 몇을 뽑고 그 자리에 나무를 심는다면 어쩌면 이 뜨거운 도시의 열을 내리고 전기 사용을 줄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최씨는 홍천으로 옮겨와서는 냉장고 등 몇몇 전자제품을 사용하지만 여전히 냉방기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서울이 아니니까 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울 사람들을 보면 경이롭다. 그 더운 세상, 아스팔트와 건물들이 열을 끌어안았다가 내뿜는데 거의 살인적인 더위더라.” 최씨는 냉방기기에 의존하지 않다보면 대안 피서법을 스스로 마련하게 된다고 한다. “시원한 곳을 찾을 줄 알게 된다. 방문을 열면 어떻다, 어느 방의 창문을 열면 바람이 더 들어온다, 어느 시간 어디에 가면 바람이 어떤 방향으로 불고 시원하다는 것 등을 알게 된다. 그런 것을 깨치면 피서의 맛이 다르다. 조금 어렵겠지만 도시에서도 자기 삶의 터전 속에서 숨을 돌릴 수 있는 피서 공간을 찾는 것이 가능하다.”

에어컨의 7분의 1, 냉장고 바지

과연 그랬다. 에어컨을 켰을 때는 꿈쩍 않던 커튼이 열어둔 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에 살랑살랑 움직였다. 한집에 사는 고양이가 먼저 찬 공기를 느끼고 그 아래 배를 깔고 앉았다. 따라가 창 아래 등을 대고 앉으니 인공적인 바람과 다른 리듬의 바람이 몸을 식혔다.

이것만으로 부족하다면 우리는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도구의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 커튼이나 블라인드가 설치돼 있지 않은 창이라면 빛을 반사하는 밝은 색의 커튼을 다는 것도 도움이 된다. 겨울철에만 주로 집중했던 집안 단열은 여름철에도 필수적이다. 환경운동연합 이지언 기후에너지팀장의 말을 옮기면 이렇다. “단열을 제대로 해야 덥지도 춥지도 않다. 열을 쉽게 받아들이고 빼앗기는 유리 창문에 단열 필름을 붙여 보완하고, 집안에서 냉방기구를 돌렸을 때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창틀이나 문틈을 꼼꼼하게 막을 필요가 있다.”

서울 시민들이 한강 광나루공원 광진교 밑에 자리를 펴고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서울 시민들이 한강 광나루공원 광진교 밑에 자리를 펴고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아이디어 제품들도 전기 사용 절감에 도움을 준다. 직장인 조원영(30)씨는 얼마 전 남대문시장에 가서 ‘냉장고 바지’를 샀다. 우연찮게 냉장고 바지를 경험한 동료가 부추겨서 모양별, 무늬별로 단돈 5천원씩 주고 석 장을 샀다. 지난해 중년 여성들 사이에서 ‘히트 아이템’이던 냉장고 바지는 몸에 닿았을 때 체온을 빼앗는 합성섬유로 만들어져 입으면 시원한 느낌이 든다. 올해 꽃무늬 등 화려한 패턴이 유행하면서 젊은 층까지 구매가 늘었다. 조씨는 쿨매트도 구입했다. 순간적으로 몸의 열을 빼앗는 화학 소재가 체감온도를 떨어뜨린다. 조씨는 “선풍기를 켜놓고 쿨매트에 누워 있으면 에어컨 역할의 7분의 1은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의 환경운동 웹진 를 만드는 캐서린 로스와 작가 브렌지엔 데이비스는 공동 저서 (갤리온)에서 “좀더 보송보송하게 잠들 수 있는 방법”으로 대나무 이불을 제안했다. 대나무 섬유는 피부에 닿았을 때 촉감이 부드럽고 수분 흡수와 통기성이 좋다. 더불어 곰팡이와 세균을 막는 천연 항균 성분도 품고 있어 더운 여름에 사용하기 적합하다고 한다.

한 끼 먹을 것만 텃밭에서 공수하여

앞으로 더 무덥고 끈적한 여름밤이 찾아오겠지만 우리는 집안의 작은 피서지를 찾아다니며, 몸의 열을 식히는 도구를 활용하면서 더위를 그럭저럭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곤란한 문제는 음식 보관이다. 냉장고 없는 삶을 실천한 사람이 몇 있다. 최성현씨는 제천에 살던 시절 냉장고를 사용하지 않았다. “(냉장고를 쓰는) 지금은 졸병의 식사, 그때는 왕의 식사. 식탁에 음식을 두 번 올릴 생각 안 하고 한 끼 먹을 것만 만들었다. 저장된 것이 아닌, 바로 논밭에서 온 음식은 정말 맛있다.”

독일 중부의 소도시 할레에 살면서 2005년부터 냉장고를 없앤 김미수(34)씨는 전기 사용량을 줄이고 꼭 필요한 노트북, 조명, 세탁기, 주방가전 등에 전기를 사용한다. 음식은 냉장고 대신 반지하 창고인 ‘켈러’에 보관한다. “가로·세로 50cm 정도의 작은 냉장고를 쓰다가 남편의 의견으로 그것마저도 없앴다. 켈러는 우 리나라로 치면 반지하 저장 창고 정도 된다. 독일 사람들 은 그곳에 병조림·잼·와인을 보관하거나 물건을 많이 쌓아두는데, 겨울에는 0~1℃ 정도로 유지돼 냉장고가 필요 없다. 냉동 저장은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주로 저 장음식을 만들거나 말려서 보관한다.” 김씨는 한국에서 살 때도 베란다를 활용해 식품을 보관하고 최소한으로 냉장고를 사용했다. 김씨는 나무나 철로 만든 구조물에 천을 둘러서 한 면에 지속적으로 물을 닿게 해 기화열로 그 속에 보관된 음식을 보관하는 대안 냉장고 를 제안하기도 했다.

[%%IMAGE3%%]

하지만 개인 텃밭이나 창고를 가지기 힘든데다 늘 일 상에 치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삶을 따라하기 가 버겁다. 이재열씨는 도시에서 특히 냉장과 관련해서 는 아직까지 대안으로 삼을 만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반 태양에너지를 이용해서 컴프레서를 돌 리는 방식이 고안된 적이 있다. 요즘 그런 것을 되살리는 작업을 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태양이 없는 밤에는 불가능하다.” 태양열 등 대안에너지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집에서 소비하는 전력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 을 만큼 설비를 하지 않는 이상 냉장고 같은 소비전력이 큰 제품은 감당하기 힘들다고 한다. 이지언 팀장은 이런 상황에서 대안 방식을 찾기보다는 일상적으로 전기를 과소비하는 삶의 방식을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이른바 효율의 함정에 빠져 에너지 절약에 도움이 된다는 가전제품으로 바꾸면서 오히려 덩치와 개수를 키우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커다란 냉장고는 많은 양의 음식 을 품고 홀로 돌아가고 있다.

소소한 실천, 1년 3만6천원 절약하기

그러니까 이 기사는 어쩌면 예정된 실패기다. 이 도시 에서 그동안 나를 숨 쉬게 한 것은 공기가 아니라 전기 일지 모른다. 하루를 못 넘기고 결국 뽑았던 전기 코드 를 하나씩 다시 꽂았다. 이재열씨는 극단적으로 전기를 안 쓰려 하기보다는 안 써도 되는 부분을 줄이라고 조언 했다. 이지언 팀장 또한 괴로워하면서까지 에너지를 절약하기보다는 일상의 작은 노력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생각의나무) 를 쓴 김도연씨는 현재 전기를 사용하는 방식대로라면, 2050년쯤에는 전세계에 필요한 에너지는 약 26조W, 이 를 현재(2010년 기준) 가동되는 규모의 원자력발전으로 만 얻는다면 새로 1만 기 이상은 건설해야 한다는 계산 이 나온다고 했다. 이런 미래가 끔찍하다면, 우리는 거 창한 무엇을 계획하기보다는 다음과 같은 소소한 것들 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냉장고의 음식을 60% 미만 으로 보관하고, 텔레비전을 하루에 1시간 덜 보고, 백열 등을 형광등으로 교체하고, 10분 이상 컴퓨터를 쓰지 않을 때 전원을 꺼두는 것 등등. 이것만 실천해도 1년에 총 3만6052원어치의 전기를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김현성).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