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인데도 부럽지 않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를 당한 뒤 사람의 눈을 보면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 박수하(이종석)는 말한다. “나의 세상은 다른 사람들의 세상보다 좀더 시끄럽다.” 특별히 알고 싶지도 않은, 그저 눈을 마주쳤을 뿐인 사람들의 잡상 혹은 진심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감정의 하수구처럼 느껴지는 삶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런 능력을 가진다면 입신양명하고 창조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해봤다. 국가고시 패스에 써먹고 싶어도 출제자와 일대일로 눈을 마주칠 기회가 없는 한 소용없다. 구직할 때 면접관의 속마음을 읽어봤자 그것은 답이 아니라 나에 대한 평가 반, 저녁 메뉴 고민 반일 테고 소개팅 상대의 마음 같은 건 알아봐야 슬퍼질 뿐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해도 속마음을 모두 알고 나면 배신감을 느끼거나 환상이 깨질 수밖에 없을 테니 진지한 대화를 하고 싶으면 눈을 감아야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아무래도 버스나 지하철에서 곧 내릴 사람의 자리를 알아보는 데나 유용한 능력인 것 같아 미련 두지 않으려던 찰나 문득 떠올랐다. 권력자나 재력가의 속마음을 읽어 입의 혀처럼 굴면 크게 출세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자신의 생각을 남이 포장해 말해주고 칭송하는 것을 기특하게 여길 만큼 단순한 윗사람을 만나야 하겠지만 이미 대뇌의 전두엽을 강타하는 주군의 얼굴이 있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아, 아직 초능력이 없구나.
최지은 기자범죄물은 가능한 한 공정한 게임이어야 하나? 아니다. 주인공을 불리하게 만드는 게 맞다. 그래야만 낮은 확률을 뚫고 적을 찾아내는 데서 짜릿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주인공에게 초능력을 부여한다? 당연히 반칙이다. 그렇다고 상대방에게 더 강력한 초능력을 준다? 그거야 이미 추리의 세계를 벗어난 판타지의 영역이다. ‘만지면 놈의 과거가 보인다’는 영화 가 식상했듯이, 역시 눈 가리고 아웅이다. 그 능력으로 해결되지 않을 범죄가 뭐가 있겠나? 만약 내게 그 능력을 준다? 이기적인 나로서는 그 능력을 범죄자들의 추접한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쓰지는 않을 것이다. 역시 가장 좋은 쓰임새는 여자들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픽업아티스트에게 이 능력이 주어진다면 그야말로 날개를 단 격이리라. 의 박수하 역시 이 방법의 유용함을 안다. 버스에서 누가 내릴지를 미리 알고 여자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지 않나? 하나 큰 문제가 있다. 내가 만약 이종석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면, 나와 눈이 맞은 여자들의 마음속에서 온갖 찬사와 기쁨의 말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외모로 낯선 여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악플이 가득한 게시판을 들여다보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남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능력을 가지고 10여 년을 살아온 이종석의 자아가 붕괴되지 않은 것은, 역시 그 얼굴의 도움이 컸다고 본다.
이명석 대중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