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1월23일은 공립초등학교 예비소집일이었다. 나도 취학통지서를 들고 아이가 입학할 학교에 갔다. 요즘은 공립학교도 많이 좋아졌다더니 방학이라 을씨년스러운 기운 때문인지 그렇게 많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우리가 다닐 때와 분명히 다르지만 교실이 넓고(내가 초등학생이던 30년 전과 비교하면 학급당 인원수가 절반으로 줄었으니 이 부분은 변화라 하기도 좀 애매하다) 책상과 의자가 달라지고 냉난방 방식이 바뀐 정도가 변화라면 변화일까. 화장실도 비슷하고,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벽도 비슷하고, 문이 잠겨 있어 창문 틈으로 넘겨보아야 했지만 도서실이나 기타 특별활동실도 더 넓어 보이는 것 말고는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투명한 배려, 무리한 바람?체육관이나 컴퓨터실처럼 내가 경험한 적 없는 특별한 시설도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아이를 맡겨야 한다는 긴장과 불안이 크게 한몫했으리라. 남의 아이가 다닐 학교에 구경 간 거라면 정말 좋다며 신기해했을 곳도 그저 다 시큰둥했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이른바 사립 투어를 다니며 눈 호강만 했던 학부모들의 상심은 특히 더했다. 좋은 환경에서 남다른 교육을 받게 하고 싶다는 마음, 부모라면 왜 없겠는가.
그렇더라도 재벌가 자제가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을 통해 국제중학교에 입학한 일은 좀 우습다. 이혼을 했으니 한부모 가정인 것도 맞고 돈이 많아도 부모의 이혼이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이해한다. 그렇더라도 구차스럽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그 정도 부를 가졌으면 자식 교육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었을 텐데 굳이 사회적 약자를 자처하는 방법을 택한 까닭을 모르겠다. 그 정도 판단력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을 이끄는 수장의 것이라니 그 기업의 미래가 다 걱정된다.
그런데 정말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은 따로 있다. 구차스럽든 정당하든 어떤 방법을 택하는 선택과 판단이야 개인의 몫이겠지만 다수의 국민은 이해 못하는 그 모든 절차가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해당 학교에서는 저소득층 지원자 수가 워낙 적어 경제적 배려자와 비경제적 배려자를 구분해 전형했고, 문제가 된 당사자는 비경제적 배려자로 적법한 서류 심사를 거쳤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해명을 냈다.
나는 그 대목이 의아하다. 일반 전형은 서류 전형을 한 뒤 공개 추첨을 거치는데 왜 유독 사회 배려자 선발은 심사를 통해 선발하는 것일까. 심사를 통한 선발은 선발자의 의도가 개입될 여지를 갖는다. 그 과정에서 재벌가의 자제라는 신분은 당락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이런 의혹은 이제까지 이 제도를 통해 선발된 다른 합격자들도 마찬가지다. 심사를 통해 선발되었다는데 심사 점수는 공개되었는지 궁금하다. 배려가 배려로서의 힘을 얻으려면 투명함과 공정함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이다. 심사의 기준과 결정 방법에 대해서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학교가 해명해야 할 부분도 교육과학기술부가 실사를 해야 할 대목도 바로 이 지점이라고 본다. 이 과정의 투명성이 입증되어야 비로소 학교도 교과부도 선발 당사자도 ‘합법’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금화에 기울어진 저울요즘 들어 부쩍 나는 법이 무섭다. 법이라는 이름으로 집행되는 부당함을 너무 자주 익숙하게 겪고 있는 탓이다. 용산의 재개발 현장에서 화염에 휩싸인 이들도, 해고돼 거리에 내몰린 노동자들도, 송전탑에서 크레인에서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도 아주 간단하게 불법의 낙인이 찍히는 데 반해, 재벌 기업의 가족 승계나 노동자들에 대한 감시와 착취, 해고는 너무도 쉽게 합법의 권리를 얻고 있다.
정의의 여신은 공평을 위해 저울을 들고 있지만, 사실 이 저울은 억울하고 헐벗은 이들을 위해 조금쯤 기울어져 있다고 한다. 그런 기울임까지 바라는 건 아니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쩐지 그 저울에 금화를 가득 담아놓은 것 같아 씁쓸하다.
한지혜 소설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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