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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불안은 보편적 의제다

등록 2013-01-04 21:43 수정 2020-05-03 04:27

대선 이후, 48%의 집단적 상실감을 보며 문득 10년 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던 분들의 패배감과 무력감을 떠올려본다. 지금 못지않게 세대 대결이 극심했던 2002년 대선에서 5060세대는 힘겹게 일구어온 대한민국과 자신들의 지나온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수모감마저 느꼈으리라. 상실감의 정도는 비슷할지 모르나 상실감의 내용은 10년 전과 지금은 큰 차이가 있다. 10년 전 5060세대의 상실감이 자신들이 살아온 과거를 부정당한 데서 오는 상실감이라면, 2012년 현재 2030세대는 자신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가 꺾였다는 절망감이 크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가난하고 불안하니까 아프다

굳이 10년 전과 비교한 것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가야 할 날이 훨씬 많은 청년층의 상실감이 훨씬 심각하고 중요하다고 강변하기 위함이 아니다. 세대 대결로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민주·진보 후보를 지지했던 1469만 표는 8할이 청년의 힘이었다. 청년의 미래가 암울한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는 청년은 물론 이들과 공존할 수밖에 없는 중·장년층의 삶도 암담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몇 년 전부터 한국 사회를 잠식해왔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진보 진영이 2030세대의 불안에 주목하고 이들의 지지를 호소했던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런데 대선에서 청년의 분노에 의존했던 민주·진보 진영이 75.9%라는 높은 투표율에도 패배했다. 무엇보다 보수화된 50대의 응집된 힘이 패배의 주요 원인으로 부각되면서 세대 전략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인구구성에서도 밀리고 투표율까지 밀리는 상황에서 2030세대에 의존한 전략으로는 승산이 낮았다는 지적이다.

2030세대 중심의 전략은 이들이 느끼는 불안, 고민, 불확실한 미래가 이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공유하는 과정이어야 했다. 비싼 등록금 내고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도 변변한 일자리 하나 얻기 힘들고 연애와 결혼도 포기해야 하고, 그래서 미래가 꽉 막혀버린 2030세대의 고민이 바로 내 자식이 처한 현실이라고 5060세대와 공유해야 했다. 그래서 청년의 문제를 청년층이 짊어져야 할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노년을 청년층에게 의존해야 하는 중·장년층도 함께 감당하고 짊어져야 할 보편적 의제로 만들어내야 했다. 하지만 대선 과정에서 민주·진보 진영은 “우리는 힘들다. 당신들은 꼰대다”라는 편가르기식, 배타적 태도를 보이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 과정에서 중·장년층은 낡은, 역사의 뒷전으로 사라져야 할 세대로 소외되었다.

청년 문제가 중요한 것은 2030세대의 불안의 핵심에 계층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즉, 젊으니까 아픈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불안하니까 아프다는 것이다. 대학 나오고 열심히 살면 그래도 중산층이 될 수 있는 시대는 먼 과거의 일이 돼버렸고, 극심한 양극화 속에 부모의 경제력에 기대기 어려운 대다수 청년은 노력을 통한 계층 상승의 기회마저 차단당했다. 2030세대의 76%가 노력한 만큼 보상과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고, 79%가 부모의 지위에 따라 자신의 지위도 결정된다는 절망적 인식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2012년 2월 조사).

 

세대 전략은 잘못이 없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이 보수 정당을 지지한다는 기존 통념과 달리 대다수의 미래가 불안하고 가난한 청년들이 민주·진보 진영을 선택하고 있다. 반면 부자 부모를 만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는 소수의 청년들은 보수 정당을 택하는 등 정치적 선택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대선에서 청년의 선택은 좌절당했지만 청년의 불안은 우리 사회가 주목해야 할 최우선 과제이자 청년은 물론 중·장년층의 미래가 걸려 있는 보편적 의제다. 2013년 새해, 1469만 명의 상실감을 끌어안고 새롭게 희망의 근거를 만들어내야 할 민주·진보 진영은 바로 여기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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