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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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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떠들자, 쫌

등록 2012-12-07 15:14 수정 2020-05-02 19:27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어떤 이가 오지랖 넓은 내 삶을 보며 다큐멘터리처럼 산다고 한 적이 있다. 그 이후 자주, 나는 ‘지금 무슨 장르를 찍고 있지?’라며 되짚어본다. ‘음… 지금은 정치 드라마, 지금은 인간극장, 지금은 슬랩스틱 코미디….’ 요즘처럼 참견할 사건이 많은 때는 눈 감기 전까지 ‘추적 60분’이다.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두었으니 정치 드라마를 찍고 있을 것 같지만 오히려 정치는 한가하다.

정치는 넘치는데 정치는 없다

학생운동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0년 초반에 대학을 다닌 나는 시대의 무게를 잔뜩 짊어진 청년학도였다. 당시 읽었던 문서들을 떠올리면 참 어마어마하다. “민주변혁 투쟁의 주력군인 학생운동의 역량을 강화하고” 같은 문장은 부끄럽기까지 하다. 주력군이 있으면 주력군 아닌 사람이 있을 텐데 그때는 그런 질문을 던질 줄도 몰랐다. 우리 사이에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었고, 중요한 문제와 부차적인 문제가 있었다. 중요한 사람과 덜 중요한 사람도 물론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을까? 불행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 어렵다. 정치의 계절이 되니 더 그렇다. 닥치고 투표. 닥치고 단일화, 닥치고 정치가 그렇다.

그때 읽은 문건에 이런 말도 있었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정치적 대격변기로서….” 그러므로 정치적 격변기에 맞게 살자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얼마나 격변스럽게 살았는지 꼼꼼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추웠던 것은 기억난다. 대통령 선거는 늘 겨울에 있었으니까.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때가 되니 자꾸 정치적 격변기, 격변기가 웅얼웅얼해진다. 이른 나이의 학습은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나 보다. 그러나 말이다. 전혀 격변스럽지 않다, 요즘. 정치는 넘치는데 정치는 없다.

절대 찍기 싫은 사람은 있는데, 찍어야 할 사람은 딱 정해지지 않는다. 너도나도 나를 찍어달라고 아우성인데 그들의 정책과 공약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사실 정책이 꼼꼼한들 신뢰가 가지도 않는다. 내가 할 말은 4대강을 만신창이로 만든, 서울 용산에서 사람을 죽인 자들, 제주 강정의 구럼비를 폭파하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몬 자들을 찍지 말자는 말밖에 없는데 그조차 어렵다. 싫다, 좋다, 입 닥치고 선거만 하라는데 정치가 어디에 있나. 지난 국회의원 선거 때 한 정당 의원의 낙선운동을 했다며 선거법으로 기소됐다. 이번에도 거리에서 피켓을 들면 죄질이 고약한 동종 전과범이 될 것이다. 죄인되기를 각오해야 하는 정치적 격변기에 무슨 정치가 있나.

밤새워서라도 이야기를

선거관리위원회만 문제일까. 얼마 전 있은 농민대회에서는 ‘농민 대통령을 뽑자’는 구호가 나왔다. 뒤에 들으니 노동자 대통령 후보를 표방한 김소연 선거본부에서 발언을 요청하자 거절당했다고 한다. 노동자대회가 아니라 농민대회라서 그랬을까? TV 출연 후보만 발언권을 주기로 했다는 주최 쪽의 알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고 했다. 더 많이 떠들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이야기해야 정치가 정치다운 것 아닌가? 그런데 너무 좁다, 아주 심하게. 어떤 이야기도 모두 선거에 묻히고, 심지어 너도나도 우리도, 모두 이런저런 이유로 입을 틀어막는다.

“투표하면 뭐하겠노, 지들만 잘났다고~ 쇠고기 사묵겠지. 쇠고기 사묵으면 뭐하겠노~ 다 묵고 또 해처묵겠지~.” 신뢰와 이야기가 실종된 정치에서 사람들은 냉소주의에 빠진다. 정치가 살아나려면 닥치라고 하지 말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밤을 새워서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쫌.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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