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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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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가본 적 없는 삶의 현장

독특한 소재로 한국 사회 조망하고 정밀하게 노동 현장 기록한 고마운 작품들…서로 다른 현장에서 서로 다른 스타일로 싸우는 <총각슈퍼 올림> <황구>를 당선작·가작으로
등록 2012-12-07 13:52 수정 2020-05-02 19:27

심사위원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손바닥문학상’이 고유한 위상을 가지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이미 너무 많은 단편소설 공모가 있으며 이 공모가 그중 하나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소외된 이들에 대한 연민, 더불어 살기에 대한 관심,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진솔한 성찰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자고 생각했다. 그것이 느껴진다면 픽션이건 논픽션이건 상관없지 싶었다.

11월20일 문학평론가 신형철, 전  논설위원·에세이스트 김선주,  최재봉 기자(왼쪽 사진 왼쪽부터)가 결심에 올라온 작품을 두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1월20일 문학평론가 신형철, 전 논설위원·에세이스트 김선주, 최재봉 기자(왼쪽 사진 왼쪽부터)가 결심에 올라온 작품을 두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오직 이 공모를 위한 원고가 답지하기를

이번에 응모된 원고들을 읽으며 우리의 바람이 실현돼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당장 지면에 발표해도 될 작품이 족히 10여 편은 돼 보였다. 응모자들은 그간 글쓰기의 소재가 돼본 바 없는 삶의 현장들로 나아가고 있었고 제각각 예리한 문제의식을 길어 올리고 있었다. 내년에도 오직 이 공모를 위해 기획되고 쓰인 원고들이 답지하기를 기대한다. 고마운 원고들의 제목을 적어두기로 하자.

손바닥문학상 응모 원고들의 유별난 미덕 중 하나는 독특한 소재를 발굴해서 한국 사회의 한 측면을 조감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병원의 건강보험료 약제비 신청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집행관을 화자로 내세운 , 친환경 농산물 인증 심사 과정을 소재로 한 , 각각 산후조리사와 텔레마케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나 등은 손바닥문학상의 개성을 잘 보여주는 귀한 응모작들이다. 그러나 충분히 완성된 이야기라고 하기 어려워 일단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같은 작품이 돋보였다. 한 편의 단편소설로서 이미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손바닥문학상 공모만이 알아보고 격려해줄 수 있는 종류의 작품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것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픽션과 논픽션의 장점을 결합한 종류의 글쓰기를 기어코 찾아내고 싶었다. 예컨대 이런 작품들 말이다.
은 독거노인의 삶을 정밀하게 재현한다. 그야말로 정밀하다. 늙고 병든 노년의 삶을 피상적으로 훑어나가는 수준이 아니라 육체와 감각의 층위에서 재현한다. 주인공 할머니가 두통약을 변비약으로 오해하고 먹어왔다는 설정이나 세제를 화장품으로 착각하고 발라왔다는 대목 등은 읽는 이를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한다. 문장이 투박했음에도 울림이 컸다.
은 잘 정제된 문장으로 쓰인 노동 현장의 기록이다. 복학하는 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려고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는 ‘나’의 눈으로 열악한 공장 상황, 여전한 산재의 문제, 중국인 노동자들의 삶, 그들과의 우정 등을 담담히 적어나간다. 얼마간 익숙한 내용들이랄 수도 있지만 거기에서 새삼스런 감동을 끌어내는 필력이 인상적이었다.

11월28일 오후 5시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서 제4회 손바닥문학상 시상식이 열렸다. 을 쓴 김민(본명 김민아·오른쪽 사진 가운데)씨, 를 쓴 윤종훈씨(오른쪽)와 출판미디어국 장철규 국장.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1월28일 오후 5시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서 제4회 손바닥문학상 시상식이 열렸다. 을 쓴 김민(본명 김민아·오른쪽 사진 가운데)씨, 를 쓴 윤종훈씨(오른쪽)와 출판미디어국 장철규 국장.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픽션·논픽션, 문학성·현장성의 아름다운 균형
은 제목 그대로 두 이등병의 일상을 차례로 보여준다. 소재 자체가 신선하달 수 없거니와 이 이야기만의 개성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 어렵기는 했지만 하루하루가 전쟁인 병영 일상의 부조리함을 정공법으로 파고드는 집중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이상의 작품들이 수상작이 되지 못한 것은 억울한 일이다. 심사위원 세 사람 모두가 이견 없이 찬사를 보낸 작품이 있었던 탓이다. 그 작품의 제목은 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주인공이 용역깡패가 되고 이윽고 개사육장의 관리인이 되었다가 마침내 그 자신이 개가 돼버리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전락의 서사는 읽는 이를 숨막히게 한다. 구성의 묘도 적절했지만 디테일의 힘이 대단했다.
이 없었더라면 가 당선작이 됐을 것이다. 두 작품 사이에 문학적 우열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스타일로 현실과 맞서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손바닥문학상이 찾는 ‘바로 이 작품’은 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작품은 모든 면에서 가장 아름다운 균형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즉, 픽션과 논픽션 혹은 문학성과 현장성 혹은 미학적 신중함과 윤리적 절박함 등이 애초에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일 수 있다는 믿음과 둘 중 어느 것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심사위원들의 욕심을 가장 만족스럽게 충족시켜주는 작품이었다. 전범이 될 만한 이 작품을 통해 손바닥문학상의 취지가 더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제4회 손바닥문학상 결심위원 김선주·최재봉·신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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