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같고 꿈결 같아서 내가 좋아하는 동네를 고르라면 경북 감포 어드메나, 강원도 용화 바닷가 어드메 혹은 전남 무안 해제반도의 끄트머리 점암 정도일 것이다. 나는 신혼여행마저 1960년대 신혼부부처럼 경북 경주며 강원도 삼척 근방을 어정거렸다. 그러나 공기 좋고 풍광 좋은 곳보다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진짜 마음의 안식처는 내 고향 입정동이다.
입정동은 매미가 울기 위해 나무 위로 기어 올라갈 때 벗어놓고 간 껍질 같은 곳이다. 사실 입정동이라는 지명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서울에 사는 누구나 서울 시내 한복판에 지하철 2호선 을지로3가역이 걸친 사거리 뒤로 철공소니 공구상이니 타일가게니 하는 가게들이 모여 보글보글 끓고 있는 곳, 마을이라는 이름이 어색한 그곳은 알 것이다. 거기가 입정동이다. 듣자 하니 동네 이름은 예전에 갓(笠)을 만드는 집들이 있는 데서 유래했다고 하더라. 지금은 그렇게 보글거리는 곳이지만 예전에는 살림집들이 빼곡했고 참기름집도 있었고 솜틀집도 있었고 연탄집과 목욕탕도 있었던 서울의 여느 동네와 별반 다르지 않은 마을이었다. 1960년대가 끝나갈 무렵부터 ‘도시화’라는 포식자가 집들을 하나씩 지워나가고 사람들이 줄어들고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학급 수가 점점 줄어들더니, 급기야 학교가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러 나와 내 친구들은 각기 다른 동네의 다른 학교로 전학하게 되었다. 이후 그곳은 낮엔 사람들이 살고 밤엔 텅 비는 동네가 되어버렸다.
그 뒤로 세월이 많이 흘렀다. 요즘도 간혹 하루 종일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바닥에는 흥건히 기름물이 둥둥 떠다니는 내 고향으로 간다. 그곳에 가면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마음은 짠하지만 편안해진다. 그건 생명이 있는 모든 종의 보편적 행동양식일 것이다.
그런데 하마터면 나에게 안식을 주던 골목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커다란 ‘양은 도시락’ 같은 건물로 치환될 뻔한 적이 있었다. 서울시가 세운상가 주변을 재개발해 커다란 건물을 세우고 세운상가 자리에 거대한 녹지축을 만든다는 말도 되지 않는 명분을 내세우며 주변의 여러 블록을 쓸어버리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하던 때였다. 훤칠한 그 시절의 서울시장이 얼굴에 해맑은 미소를 가득 담고 비둘기 날리고 꽃가루 흩뿌려가며 개발을 선언하는 의식까지 거행했다. 입정동의 추억이 재개발될 위험 앞에서 나는 마치 댐이 세워져 고향이 물에 잠긴 수몰민의 비애에 깊게 공감하며 신문에 실린 그들의 의식을 애처롭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그들의 잔치는 한없이 바람을 불어넣기만 하던 욕망의 풍선이 요란하게 터지며 막을 내렸다. 서울시장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며 나의 고향은 살아남게 되었다. 정말 우스꽝스러운 촌극이고 아찔한 우화였다.
나는 요즘도 자주 수렁에서 건진 내 고향, 나의 ‘소울 시티’를 보러 그곳에 간다. 요란하게 돌아가는 기계 굉음과 사람을 밀치며 골목을 누비는 오토바이와 어느 구석 쭈그리고 앉을 곳도 없는 팍팍한 골목으로 마음의 안식을 구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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