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균동 감독이 어린 시절을 보낸 만리동에는 마부들이 살던 초가집, 나무의자가 있던 이발소 같은 ‘옛날 서울’이 있었다. 10여 년 전 만리동 모습. 한겨레 자료
이상한 질문이지만 이상한 일이기 때문에 먼저 해본다. 누구나- 아직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언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일단 누구나라고 하자-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아무런 이유도, 어떠한 전조도 없이 눈물이 솟구치는 경험을 갖고 있다.
내가 아는 작가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진을 찍으러 갔다. 인근 조그만 부락을 지나치다가 발길을 멈추었다.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는 거다. 카메라를 던져놓고 한참을 멍하니 바라만 봤다. 이곳을 와본 것도 아니고 아는 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온몸이 반응했는지 알 길이 없더란 이야기다. 그 뒤 술자리에서 그는 ‘아마도 전생에 이곳에서 살지 않았나 싶다’ 하고 해명할 길 없는 사태에 대한 해명되지 않는 말을 던져놓고 웃었다.
나 역시 그런 곳이 있다. 아니 그런 경험이 있다. 20대 때 힘겨운 시기, 왜 그곳을 갈 생각을 했는지 정확지 않지만 내가 태어난 곳을 가본 적이 있다. 서울 서부역 뒤 마부들이 살던 좁은 골목의 초가집들이 즐비했던 그곳, 낡은 바리캉과 나무의자가 있던 이발소, 돌담장길, 계단, 개천, 아현성당… 그 부속 유치원을 기억한다.
세월이 흘러 거의 흔적이 없다시피 하지만 당시는 그래도 공간의 윤곽이 남겨져 있었다. 지금도 아직 개발이 덜 된 탓에 조금은 흔적이 남아 있다. 어른이 돼서 홀로 유치원 시소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누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참 민망한 일이었다. 곰곰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감정을 수습하고 자리를 피했던 기억이다.
그런데 의외로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맞아, 나도 그런 적 있어’ 하며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신비한 표정을 짓는다. 이 글을 읽는 이들도 잠시 홀로 생각할지 모른다. 그래… 근데 왜 그럴까? 나의 경우는 대충 짐작이 되지만 대체로 인연도 없이 전조도 없이 느닷없이 하염없이 그냥 눈물이 났던 ‘장소’가 있더란 이야기다.
혹시 각각의 유전자에 숨겨진 그곳이 있지 않을까에서부터 같이 있던 사람 때문 아닐까, 색깔? 공간의 구도? 햇살? 어떤 소리? 온도? 이러한 무수한 우연의 결집으로 바로 그때 그 장소에서 몸이 반응하고 몸은 무너져내리며 때론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고 때론 성찰도 하며 때론 밑 모를 위로를 받기도 한다. 나만의 장소가 주는 마력 중 하나일 게다. 그런 점에서 나의 몸은 커밍아웃한 셈이다.
결혼을 하고 세 딸과 아내와 함께 그곳, 만리동길을 걸었다. 물론 이전의 감동이 그대로 다가올 리 없었지만 낡은 사진이 복원되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았다. 기시감을 느낄 때 설명할 길 없는, 차원 이동하는 듯한 느낌 말이다. 바로 이 설명할 길 없는, 그러나 빠져나올 수 없는 장소… 그 속에 나만의 영혼이 사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지금도 1년에 한두 번씩 마음이 힘들 때 그곳을 가본다. 여러분들은 어떠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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