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에 대한 작은 공감 그리고 다수의 비인간성에 대한 작은 저항이 세상을 바꾼다.”(스탠리 코언)
그렇다. 세상은 약한 이웃들의 고난을 외면하지 못하고 그들 곁에 선 사람들에 의해 여기까지 왔다. 다들 자기 살기 바빠서 눈 돌릴 겨를도 없이 지낼 때, 세계의 비참이 못내 불편했던 예민한 사람들이 있어 이 별이 ‘인간’의 별임을 일깨운다.
“우리의 이런 처지는 빗자루만 알지”
김세현·오수빈·용락의 (실천문학사 펴냄)는 이처럼 민감한 인권 감수성을 가진 대학생들의 고군분투기다. 학내 청소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하고 부조리한 현실에 눈뜬 연세대생들이 노동자들과 함께 노조를 만들고 울고 웃으며 싸운 2천 일간의 기록을 담았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2007년 여름, 이랜드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장에서 방학을 보내고 학교로 돌아온 학생들의 눈에 ‘투명인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청소노동자, 경비원, 식당 조리원이 그들이었다. 그들 가운데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특강을 듣던 류하경·이지언·김선명수씨가 먼저 제안을 했다. 특강의 일환으로 진행되던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의 실태조사를 함께 하자는 것. 그들은 ‘투명인간’을 찾아나섰다.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은 명패도 없는 육중한 쇠문에 숨겨져 있었다. “늦여름, 많은 사람들이 부대끼는 휴게실에 냉방 장치라곤 툴툴거리는 선풍기가 고작이었다. 그런데도 문은 늘 닫혀 있었다.” 긴장하는 빛이 역력한 엄마뻘의 노동자들에게 수업 과제로 실태조사를 하러 왔다고 둘러댔다. 대부분의 노동자가 설문에 응했다.
취합한 설문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노동자들은 일상적인 초과근무에도 수당은커녕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고 있었다. 매달 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할 140만원의 임금 가운데 용역회사가 실제로 지급한 돈은 적게는 63만원에 불과했다. 왕이라 불리는 현장 소장의 일상적인 욕설, 성희롱, 금품 갈취 등도 상상 밖이었다. 한 소장은 자신이 다니던 교회 청소를 시켰고, 다른 소장은 자신이 운영하던 감자탕집에서 회식을 강요했다. 이런 부조리함 뒤에는 간접고용이라는 법의 외피에 숨어 이를 방조·묵인하는 대학이 있었다. 사실 대학의 치졸함은 그 이상이었다. 학교는 건물에서 나온 폐지를 팔아 쌀을 사던 노동자들에게 학교가 직접 폐지를 판매하겠다고 통보했다. 사적으로 폐지를 유출하면 엄벌하겠다면서도 수거와 처리는 청소노동자를 시켰다. 학교는 청소노동자 1인당 월 2만원을 가져갔다.
한 여성노동자가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일하는 건, 빗자루밖에 몰라.” 그 말을 듣는 학생들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같은 공간에서 벌어진 불의와 부당함을 모르고 떠드는 진리와 자유는 무엇이었을까. 학생들이 아는 해결책은 하나였다. 노동자들을 모아 회사나 학교에 대항할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노조를 만드는 일이었다. 노동자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뻔질나게 휴게실을 드나들었다. 어머니뻘인 노동자들과 잡담을 나누는 시간이 많아졌다. 얘기의 끝은 이 부당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로 모아졌다. 학생들은 본격적인 조직화를 결심하며 모임 이름을 정했다. ‘노동이 평등한 세상, 노동이 살맛나는 세상을 꿈꾸는 학생모임, 살맛’.
속 깊고 대견한 대학생들이 지핀 불
학교도 가만있지 않았다. 학교의 지시를 받은 용역회사 소장들은 부당한 인사이동으로 겁박해왔다. 용역회사 부장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한 여성노동자가 다른 건물 담당으로 ‘유배’갈 위기에 처하자, 급기야 학생들이 들고일어났다. 학교는 용역회사에 책임을 묻겠다고 나왔고, 왕처럼 군림하던 부장은 굴욕적으로 사과했다. 이 일을 기화로 노조 결성은 급물살을 탔다.
그렇게 2008년 1월26일, ‘민주노총 공공연맹 전국공공서비스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연세대분회’가 출범했다. 학생들은 어머니라고 부르던 노동자들을 조합원님이라고 부르며 장미 한 송이를 건넸다.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만이 아니었기에 그날 이후 학생들은 ‘한글교실’ ‘컴퓨터교실’을 열어 함께 배웠고, 김장철에는 함께 김치를 담가 먹었다. ‘연대로 사는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노조의 단결력에 학교는 번번이 무릎을 꿇었다. 학내 투쟁과 서부지청에서의 투쟁으로 체불임금 3억5천만원을 받아내고 횡포를 부리는 용역회사를 교체시켰다. 교내에 노조 사무실을 마련하고 파업에 이른 단체협약을 통해 ‘최저임금’에만 고착된 관행 너머 ‘생활임금’ 보장을 요구했다. 아울러 타 대학의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을 돕고, 이랜드·재능교육 등 비정규 노동쟁의에도 힘을 보탰다. 지난해 3월에는 시급 200원 인상과 노동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며 380여 명의 조합원이 전면 파업에 나섰다. 학교가 지저분해졌지만 학생들은 파업을 지지했다.
연세대에서 거둔 성과의 많은 부분이 ‘서울중심주의’와 ‘학벌주의’에 힘입은 것이었다고, 자신들이 청소노동자를 도운 것이 연대의식이었는지 동정심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로 저자들은 속이 깊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청소노동자의 투쟁을 다룬 켄 로치의 영화 처럼, 이 책은 안온한 일상에 뜨거운 불을 지폈다. 뒤늦은 취업 준비로 끙끙대면서도 복수노조 시행 이후 위기에 처한 노조의 오늘을 걱정하는 이 대견한 젊은이들에게, 그 불이 꺼지기 전에 술이라도 사줘야겠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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