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딱 20년 전, 나이 서른셋에 난생처음 비행기를 탔다. 그것도 국제선을, 국적항공사가 아닌 외국항공을 이용하게 됐다. 캐나다 서부지역 교민회가 한국의 민주주의 상황에 대해 강연해달라고 초청하며 왕복항공권을 보내왔는데, 날아다니는 비행기를 바라는 봤어도 타볼 기회가 없던 나는 정작 강연보다도 비행기 타는 해외여행에 마냥 들떴다. 더구나 사진으로나 동경해오던 대자연의 나라 캐나다라니!
그러나 그 설렘은 곧 걱정의 먹구름 속에 갇혔다. 이제나저제나 문제는 영어였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탑승 순간부터 시련과 당혹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카운터의 항공사 직원은 친절하게도 나의 ‘기럭지’(기형적으로 긴 나의 하체를 알 만한 이들은 다 안다)를 배려했는지, 내 좌석은 이른바 보통석의 황금 자리라는 비상구 바로 옆 자리로 배정해주었다. 이 자리는 ‘눈부시게 세련되고 아름다운’ 승무원을 코앞에 마주 보고 앉는 자리다. 이 ‘행운’을 ‘능동적’으로 감당하기에 나의 영어 구사 능력은 턱도 없었다. 이착륙 때는 물론 기류 이상으로 승무원과 수시로 마주 앉게 되는데, 눈만 마주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기에는 피차 부담이 됐을 터다. 눈부신 미소와 함께 이러저러한 말을 마구 건네오는데, 아뿔싸! 학교에서 배운 의 몇 문장은 암기라도 했건만, 내 입에서는 단 한마디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말은커녕 뭐라 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저 바보처럼 비실비실 웃기만 할 뿐이었다. 진땀은 또 왜 그리 쏟아지던지, 속옷까지 다 젖었다. 그 아름다운 승무원은 필경 내게 어떤 장애가 있는 줄 알았을 게다. 끝내 옆자리의 인상 좋은 외국인 노부부도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게다가 기내식으로 뭘 먹겠는지, 와인은 하겠는지, 커피도 원하는지, 이런 물음조차 알아듣지 못해 나는 무조건 “예스”를 남발했다. 할 줄 아는 영어라곤 오직 “예스” 한마디였다. 어려서부터 절대 음식을 남겨서는 안 된다는 가정교육 덕분에 나오는 기내식은 남김없이 먹었고, “노” 할 용기가 없어 마실 줄도 모르던 와인은 주는 대로 모조리 다 마셨다. 결국 밴쿠버에 내릴 즈음 나는 그만 음식에 체하고 술에 취해 거의 빈사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기압 때문에 기내에서의 와인 한 잔은 지상에서 한 병에 버금가는 효력을 발휘한다는 사실도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됐다.
장거리 비행 멀미에다 취하고 체했으니 제정신일 리 없었다. 시야는 희미해지고 혀는 꼬였으며 발은 헛나갔다. 게다가 밴쿠버 공항은 설사 제정신이었더라도 초행길의 나에겐 거의 미로와 같았다. 급기야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람 아무에게나 도움을 청할 요량으로 물었다 “아 유 코리안?” 아, 그냥 한국말로 “한국인이세요?” 하면 될 것을! 나는 밴쿠버 공항에 있던 그 많던 동양인들이 다 한국인인 줄 알았다. 홍콩 반환을 앞두고 홍콩 사람들이 대거 밴쿠버로 이민을 오고 있는 사실도 당시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 유 코리안?”을 수십 번 했을까? “네, 한국 사람인데요.” 마침내 정신을 확 깨게 하는 ‘한국말’을 들었다. 정말 붙잡고 울음이라도 터트릴 심정이었다. 그제야 저 앞의 한국인 안내데스크가 눈에 띄었다. 밴쿠버. 그 설레고 아름다운 도시는 지금도 되새기면 땀이 삐질삐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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