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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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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페’에 서는 밴드의 자세

등록 2012-08-07 18:26 수정 2020-05-03 04:26
68년 혁명 운동 기간 중 미국 캘리포니아의 베니스 해변에서 열린 록페스티벌. 자연스럽고 거침없는 여성의 뒷모습이 자유와 해방의 혁명 정신을 보여준다. 한겨레 자료사진

68년 혁명 운동 기간 중 미국 캘리포니아의 베니스 해변에서 열린 록페스티벌. 자연스럽고 거침없는 여성의 뒷모습이 자유와 해방의 혁명 정신을 보여준다. 한겨레 자료사진

글 김인수(밴드 ‘크라잉넛’)

 놀지 않는 록페스티벌(이하 록페), 상상도 할 수 없다. 록페에서는 정말 모두가 ‘놀고 있다’. 관객도, 밴드도, 기획하는 제작진들까지도. 이번 지산에서 한국의 뮤지션들은 들국화의 공연에 와서 합창하고 리암은 스톤 로지스가 공연할때 춤을 추고, 픽시스가 공연했던 한 페스티벌에선 잭 블랙이 머리에 피를 흘려가며 열광했다. 모페스티벌의 기획자도 펫숍보이스의 무대때 정신줄 놓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밴드가 록페에서 무리수를 두는 이유  

 그렇지만 무대 위에선 어떻게 놀아야 하지? 우리는 이렇게 논다. 1990년대 록인코리아, 소란, 자유 등의 떼공연이 있었다. 그때는 밴드가 시작하는 시기였으니 일단 많은 관객들이 반갑고 새로운 물에서 노는 물고기 마냥 그리고 마치 록스타가 된 마냥 즐겁기만 했다. 신대철 형님이 쏟아지는 폭우를 향해 ‘한국록은 이래서 안돼’라고 외쳤던 천재지변으로 취소된 저주받은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도 있다.

 2000년도 후지록 페스티벌을 밟았을 때는 우선 그 규모와 진행 스케일에 놀랐다. 다음으론 숙소와 밴드 대기실 그리고 벡스테이지 대기실까지 그저 우리동네에서 인기인이었던 우리에 대한 배려에 놀랐다. 술은 달라는대로 주고 삼각김밥은 한국에 지고 갈 만큼 줬다. 텐트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음향 조절도 훌륭했고 무대에서 물병이 넘어져도 세워줬다. 연주도 대신 해달라면 해주지 않을까 했던 환상의 무대. 그렇기에 최선을 아니 만용까지 부리는 무대가 되어버렸다.

 몇년도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국내 모 페스티벌. 무리수로 를 첫곡으로 연주했다. 순간 마치 영화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야만인들이 언덕을 넘어 우리를 공격하러 돌진하는 장면. 그들의 손에는 닭꼬치나 맥주컵 같은 것들이 들려있고 우리는 속으로 ‘무서워!’를 외쳤다. 그날 모든 공연이 끝나고 한 팬이 나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해외 헤드라이너 보다 좋았어요.”

 2006년 강촌 모처에서 열렸던 플로우 페스티벌. 디제이와 밴드들이 강촌의 모 펜션과 근처 부지에서 열었던 페스티벌이다. 밴드의 공연과 디제이들의 무대가 밤새 진행되었다. 없는 살림에 무리해서 기획했던 페스티벌이다보니 주최측이고 밴드고 디제이고 자신들이 가져온 음식이며 술들을 나누어 먹으며 너나 할껏 없이 같이 어울려 함께 밤새 취해갔다. 시내에 중국음식을 시키자며 억지를 부리는 자도 있었고 취한 김에 축구를 하다 넘어지는 사람도 있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앞 록 페스티벌

 멤버들이 군대에 다녀온 직후 스웨덴의 트라트스톡 페스티벌(TRASTOCK FESTIVALEN)에서 공연한 적이 있다. 스톡홀름에서 비행기로 한시간 가량의 지역 중소도시. 주최는 지역의 문화센터. 헤드라이너 정도나 국내 매니아들은 알만한 데스메탈 밴드와 하드록 밴드. 나머지는 지역 뮤지션과 스웨덴 인디밴드들. 처음보는 동양인들이 기타를 메고 지나다니는데 사람들도 신기해한다. 할 수 없이 가져간 음반과 티셔츠를 나누어 주며 호객행위를 했다. 객석의 반도 안찬 무대에서 사운드체크겸 Sham69의 ‘If the kids are united’를 연주해보았더니 ‘아, 이 노래 안다’며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우리를 처음 보는 관객들이 난생 처음 듣는 언어의 노래를 감으로 따라 부르며 춤을 춘다. 그때부턴 그냥 노는 거다. 내가 열심히 놀지 않으면 그들도 즐겁지 않다. 함께 노는거다.

 작년 북미 투어중 텍사스 오스틴에서 참가한 SXSW 페스티벌. 오스틴의 다운타운은 차량이 통제된 상태로 거리와 클럽,펍 심지어 피자가게에서도 공연이 열렸다.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은 거리에서 연주하고 월드컵때 시청광장에 모인 만큼의 사람들이 이공연 저공연을 보러 돌아다닌다. 잠시도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소리들의 향연이다. 모든 장르와 전세계의 사람들이 연주한다. 서울소닉 프로젝트로 우리는 200년된 목조 건물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한창 공연을 하는데 건물 붕괴 위험이 있다며 경찰이 출동했다. 그래도 아무도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2012 서울소닉’ 최대의 파트너인 샌프란시스코 밴드 멜보이를 운명적으로 만났다.

 바로 한달전 우리는 오키나와 시에서 주최하는 피스풀 러브록 페스티벌(Peaceful Love Rock Festival)에 초청받았다. 일본 각지에서 아티스트들이 모이고 오키나와 출신 뮤지션, 대만의 소수민족 음악 전수자 그리고 한국에서는 우리가 왔다. 첫날의 헤드라이너인 오키나와 출신 뮤지션은 평화와 인류애를 노래하고 대학교 노천극장만한 그다지 크지 않은 공연장에 많은 사람들이 온가족과 함께 록 페스티벌을 즐긴다. 공연장은 오키나와 주둔 미군 부대 바로 앞의 체육공원. 그래서였을까. 모든 공연은 9시 이전에 끝났다.

목이 터져라 노래하는 그 안에

 밴드가 올해로 17년이 되다 보니 이런 저런 공연을 하고 수다한 록페스티벌에 참가했다. 무엇이 좋다 나쁘다 말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종류의 페스티벌이 있다. 축제 주변의 모습들도 보게된다. 후지록 페스티벌에선 원자력 발전 반대와 환경운동 서명 부스를 봤다. SXSW에선 오피셜 무대에 참가하지 못한 밴드들이 장비를 실고와서 거리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봤다. 스웨덴에선 환경운동가와 동물 해방론자들을 만났다. 자유 공연에선 당시 문제였던 사전심의 철폐 서명을 했고 오키나와에선 ‘이 땅 위의 모든 인간은 하나’라는 연설을 들었고 얼마전 그린플러그드에선 음원 정액제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들었다. 우리에게도 많은 목소리가있다. 많은 문제들도 있다. 록페는 노는 것이다. 그 안에서 연주하는 우리들은 그런 문제들을 다 떠 안고 노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름밤을 다 가도록 미친듯이 춤추고 목이 터져라 노래하는 그 안에는 이런 저런 문제들이 있는 것이다. 록페는 노는 것이다. 밴드는 더 열심히 놀아야한다. 페스티벌 덩치가 더 커져서 음악가들의 목소리가 가려버릴지라도 내 목소리에 저들이 춤추도록 놀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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