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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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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을 넘어선 권능

등록 2012-08-07 16:59 수정 2020-05-03 04:26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지난 7월27일 희망버스 재판 때문에 부산으로 향하는 길에 소식을 들었다. 자동차 부품업체 SJM과 만도기계에 새벽, 전격적으로 용역깡패들이 들이닥쳤다는 것이었다. 수십 명이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소식. 늘 분노스러워만 해야 하는 처지가 서글펐다. 수많은 이들이 함께한 희망버스의 성과도 철옹성 같은 자본의 벽 앞에서는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진 조남호 회장은 공장을 정상화해 1년 이내에 해고자들을 복직시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을 심산인 게 분명해 보인다.

그 무한한 힘, 누가 준 것일까

어디 한진뿐인가. 수많은 이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받아 호소에 호소를 거듭하고 있는 쌍용자동차 문제도 아직 가닥이 잡히지 않고, 대법원의 부당 해고 판결을 받고도 재해고당한 콜트·콜텍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은 2천 일을 훌쩍 넘기고 있다. 1700일이 되어가는 재능교육 이야기는 뜸하고, 풍산과 골든브릿지 등 신규 투쟁사업장들도 소리소문 없이 억장이 무너지는 날짜만 늘어만 간다. 이러한 때 다시 또 누군가가 짓밟히고 끌려간다는 소식을 듣는 마음이 말할 수 없이 불편했다.

다행히 이번 SJM과 만도기계에 대한 폭력적 침탈을 기화로 처음으로 자본의 사병 집단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일어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진상 규명에 나서겠다고 한다. 문제가 된 용역경비업체 ‘컨택터스’는 자신들을 ‘민간군사기업’의 용병이라고 불러왔다. 2006년에는 박근혜를, 2007년엔 이명박 대통령의 경호를 맡았다. 스스로 자본과 권력의 개임을 자랑스러워한다. 가장 폭력적인 이들이 그간 가장 안전하게 경찰과 정부의 보호를 받아왔다.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현장에 있던 노동자들이 ‘살려달라’고 112에 수차례 전화했지만 경찰이 와서 한 거라곤 사업주 쪽을 만나 일이 잘 진행되느냐는 상황만 보고받고 돌아가는 일이었다. 이들에 의해 수많은 이들이 인권을 유린당했지만, 그렇게 당한 노동자가, 철거민이, 노점상이 오히려 구속되고 전과자가 되는 동안 단 한 번도 이들이 처벌받았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도대체 그 무한한 힘은 누가 준 것일까.

어쩌다 보니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현장에서, 용산에서, 또 어디에서 수없이 이들과 맞닥뜨려야 했다. 이들에게 멱살이나 허리춤이 잡혀 음침한 곳으로 끌려가보기도 여러 번이다. 몇 번이고 경찰에 신고도 해봤지만 앞의 경우와 똑같았다. 경찰과 이들의 공동작전은 환상적이기까지 했다. 용역깡패들이 미끼로 분란을 조장하고, 저항하면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게 경찰의 역할이기도 했다. 용산 참사를 그린 다큐 에도 잘 나오듯 때에 따라 이들의 권능은 공권력을 넘어선다. 그간 무수히 우리는 그런 용역깡패 집단, 자본의 사병 집단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지만 단 한 번도 사회적 공론화가 되지 않았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나의 체념에서 비롯된 건 아닌지

하지만 더 나아가 우리는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자본의 이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용납되는 이 잔인한 문화가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 그건 혹 나의 체념으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닌지, 나의 무지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닌지, 나의 외면으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닌지, 나의 모순으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때가 아닐까. 합법적 폭력인 공권력을 넘어 사제 폭력에 기대지 않고는 자신들을 유지할 수 없는 저 자본과 권력이 숨기고 있는 것은, 착취하고 있는 것은, 독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이젠 물어보아야 하지 않을까.

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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