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어서도 인도네시아의 독립(메르데카)을 원한다. 메르데카, 메르데카, 메르데카!”
1949년 8월10일 인도네시아에서 한 청년이 마지막 말을 남기고 처형당했다. 그를 죽인 것은 일본 패전 뒤 인도네시아를 재침략한 네덜란드 군대였다. 1975년 11월 인도네시아 정부는 청년을 ‘독립영웅’으로 추서하고, 그의 주검을 국립묘지에 안장했다. 비석에는 야나가와 시치세이(梁川七星)라는 일본 이름이 새겨졌다. 그의 본명은 양칠성(梁七星)이었다.
조선인 군무원, 인도네시아 독립영웅 되다
그는 인도네시아의 ‘체 게바라’였을까? 양칠성은 1919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났다. 20대 초반 남양군도로 징용을 갔다. 인도네시아 서부 자바 치마히 수용소에서 군무원 신분의 포로감시원으로 일했다. 1945년 8월, 350여 년간 인도네시아를 지배한 네덜란드가 다시 점령군으로 왔다. 양씨는 게릴라 부대 ‘팡에란 파팍’을 이끌며 ‘반둥 불바다 사건’ ‘치바투 철교 폭파’ 등의 공을 세웠다. 함께 독립전쟁에 참여한 수하트로 등의 동지들이 그를 독립영웅으로 추대한 이유였다.
무라이 요시노리(69·村井吉敬) 와세다대학 교수, 우쓰미 아이코(71·內海愛子) 오사카경제법과대학 교수 부부의 (역사비평사 펴냄)는 양칠성처럼 태평양전쟁 당시 인도네시아 자바섬으로 파견된 조선인 군무원들의 이야기를 추적한 역사 르포르타주다. 군무원은 일본 군대에 고용된 말단 실무담당 민간인 노무자였다. 일본이 패전한 시점에서 조선인 군무원 수는 총 15만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징병이 개죽음을 뜻하던 태평양전쟁 말기, 조선 젊은이에게 ‘군무원’ 지원은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그러나 식민지 청춘들의 삶이 애당초 순탄할 리 없었다. 일왕의 항복 선언과 함께 인도네시아에도 연합군이 상륙했다. 연합군은 “전쟁범죄에 관한 한 조선인은 일본인으로 취급”한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일본제국의 전쟁 중에 가장 끝자리에서 첨병 노릇을 했던 조선인들은 곧바로 전범으로 몰려 재판정에 서야 했다. 네덜란드령 인도 법정과 영국군 주둔지 싱가포르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조선인은 모두 74명(사형 5명)이었다. 또 다른 제국주의자들에게 식민지 약자의 불가피한 처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앉아서 치욕을 당할 것인가, 아니면 맞서 싸울 것인가. 양칠성 같은 이들은 후자를 택했다. 그는 전범으로 수감되기 전 극적으로 탈주해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투신했다. 물론 ‘조선인 양칠성’이 하루아침에 반제국주의 투쟁의 선봉에 선 것은 아니었다. 양씨를 포함한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은 일본 패망 이전부터 비밀결사 ‘고려독립청년당’을 조직해 일제와 싸웠다. 굶주림과 강제노동으로 죽어가는 포로들을 보며, 일본 장병들에게서 차별과 모멸을 겪던 26명의 조선인 군무원들이 총령 이억관을 필두로 항일무장운동을 벌인 것이다. 포로수용소장과 일본 무기상인을 사살하는 테러에 나서는 등 이들은 머나먼 타국에서 조국 독립 힘을 보탤 수 있을 길을 끊임없이 모색했다. 그 길의 끝에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이 있었다.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씨 번역
조국의 해방 이후에도 인도네시아의 독립전쟁에 참여한 그들 모습에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중국에서 항일전쟁을 치른 김산과, 해방 이후에도 일본공산당 재건운동에 앞장선 자이니치(재일동포)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들은 모두 민족주의에서 발원해 보편주의로 나아갔다. 광기의 시대에도 의연하게 국제주의의 깃발을 들고 선 그들 덕분에, 인류의 양심이 덜 남루해졌다.
한편 양칠성과 같이 타국에서 이름을 잃은 채 숨져간 조선인들이 역사적 조명을 받기까지는 이 책의 저자 우쓰미와 무라이 교수 부부의 노력이 컸다. 무라이 교수는 1976년 묘지 이장 행사의 통역을 맡아 인도네시아를 찾았다가, 유족이 없는 야나가와의 신상에 의문을 품고 조사한 끝에, 그가 조선인 양칠성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원서가 일본에서 출간된 1980년 이후에도 추가 조사를 통해, 네덜란드와 싸우다 죽은 또 다른 7명의 양칠성을 찾아냈다. 무라이 교수 부부의 집요한 추적·연구가 없었다면 ‘양칠성들’의 신산스런 삶과 부조리한 운명은 역사로 기억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두 차례에 걸쳐 한국어판이 출간된 이 책의 세 번째 번역은, MB 정부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 김종익(57)씨가 맡았다. 그가 이 책을 만난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그는 “불의한 정치권력이 장악한 국가를 상대로 개인이 ‘보편 세계의 가치’를 주장하는 일은, 삶의 부조리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허망의 반복”이었다고 고백하며, “이 책의 번역은 한 미천한 영혼이 불의한 정치권력에 맞서 싸우며 끝내 자기 파멸에 빠지지 않겠다는 절규를 내질렀던 시간의 증표”였다고 말했다.
식민지 조선의 백성으로서 일제의 전쟁에 휘말려 머나먼 적도 땅에서 죽어가야 했던 조선인 군무원들의 이야기를, 한국의 역사가가 아닌 자국의 역사를 반성하는 일본의 학자들이 엮고, 이를 21세기 국가 폭력의 희생자인 한 시민이 옮겼다는 사실이, 역사가 예비한 운명적 만남인 것만 같아 숙연하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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