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우리를 처음 맞은 건 팔다리가 잘린 사람들이었다. 지방 소도시의 시외버스터미널 같은 공항에서 그들은 목발을 짚고 절룩이며, 혹은 하나뿐인 손에 물건을 들고 낯선 동양인 입국자들에게 흥정을 붙여왔다.
‘사자의 산’. 우렁차고 사뭇 낭만적인 느낌의 나라 이름과 달리, 시에라리온은 권력층의 부정부패와 민중의 절대적 빈곤, 이로 인해 촉발된 오랜 내전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다는 이 나라의 다이아몬드는 내전의 자금줄이 되어, 부귀 대신 유혈을 선사했다. 내전 당시 반군들이 자행한 소년병 징집과 사지 절단 행위는 인류의 영혼을 뒤흔들어놓은 사건이었다.
우리를 두 번째로 맞이한 건 현지 일정을 안내할 카트린이라는 당당한 체구의 여성이었다. 그의 우렁찬 목소리와 거침없는 태도는 우울한 풍경 속으로 침잠해가던 일행의 분위기에 일순 활기를 불어넣었다. 직전에 방문한 나라에서 아프리카인들은 참 느긋한 성품을 지녔다고 생각한 것이 편견일 수 있음을 단박에 깨달았다.
숙소는 잘 지어진 호텔이었는데, 입구에는 소총으로 무장한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 시내의 큰 건물은 죄다 폭탄과 총알에 찢긴 상처가 선연했지만, 호텔만은 온전해 보였다. 다이아몬드 거래상들이 이용해온 곳이라고 했다. 객실 창밖으로 대서양의 푸른 물결이 펼쳐지고, 검은 가지에 붉은 꽃을 피운 열대의 나무들이 우뚝했다.
호텔을 나서면 온통 ‘빈민가’라고 표현해야 할 풍경이 에워싸고 있었다. 현기증 나는 대조였다. 그들의 선조가 노예로 팔려갈 때 지났다는 좁은 굴다리 앞에는 남루한 차림의 젊은이들이 할 일 없이 앉아 어떤 분노를 담은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산 위에 거대하게 지어진 미국대사관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는 물동이를 나르는 꼬마들이 많았다. 해방 노예들이 돌아와 세운 나라의 수도답게 프리타운이란 희망의 이름을 지녔건만, 이 도시는 절망의 커다란 화폭이었다. 카트린은 그 자신도 겪어내야 했던 내전의 상처와 지독한 가난에서 동포를 치유하려고 고군분투하는 현지 국제기구 요원이었다. 나로선 며칠 머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어지러워지는 그곳에서 근기를 잃지 않는 모습이 붉은 꽃을 피운 나무 같았다.
일이 터진 것은 다음날 앰퓨티(amputee), 즉 팔다리가 잘린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에 갔을 때였다. 갑자기 속이 메스껍고 장이 꼬이고 현기증이 일었다. 한 민가의 화장실을 찾았다. 커다란 구덩이 위에 나무짝 두 개가 걸쳐져 있었다. 현기증은 갈수록 더했다. 말라리아인가 싶어 덜컥 겁이 났다. 카트린이 차량을 수배해 병원으로 달렸다. 좁은 판자촌 골목길을 헤치며 달리는 차창 밖으로 무채색의 풍경이 빠르게 스쳤다. 앰퓨티들, 굴다리 앞의 청년들, 천진한 표정 탓에 더 안쓰러운 아이들…. 현기증이 났다.
그건 단지 일사병이었을까. 나태한 영혼이 극단의 비참을 목도할 때 겪는 현기증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어떤 극단의 풍경이나 상황을 접하게 될 때면 프리타운을 생각한다. 무표정한 듯 측은한 눈길로 내 이마를 짚어보던 카트린의 억세면서 따뜻했던 손을 떠올리며, 비참을 대하는 자세를 추스르는 것이다.
박용현 전 편집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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