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가을, 나는 조그만 옷 보따리를 둘러메고 이름도 낯선 영국의 코벤트리라는 곳으로 향했다. 죽기 전에 2대륙 이상에서 살아보는 것이 꿈이었고, 오랫동안 비슷한 활동으로 뭔가 새로운 자극과 충전이 필요한 시기라는 판단하에 내 자신에게 1년6개월의 타국 생활이라는 상을 내린 것이다.
평화학을 공부하러 간 코벤트리는 나에게 처음에는 ‘세계화의 실제’쯤으로 다가왔다. 학교 기숙사에 짐을 풀고 배가 고파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 ‘테스코 익스프레스’(한국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홈플러스에서도 사먹을 수 있는 익숙한 그림의 테스코 시리얼과 두유를 사들고 나오며 ‘나는 누군가, 여기는 어딘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곧 제2차 세계대전의 깊은 상처와 슬픔을 딛고 평화와 화해의 도시로 발돋움하려는 영국의 이 자그마한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코벤트리의 공장들이 제2차 세계대전 초창기 영국군에게 군수물자를 공급하는 요충지로 기능했기 때문에 전쟁 당시 독일군의 폭격(작전명 월광소나타)으로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던 곳이다. 해서 흔히 전쟁과 그로 인한 피해의 기억만 반복되는 정치와 다르게 이곳의 시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은 이른바 안보를 위해 필요했던 군수물자 생산 공장들 때문에 되려 폭격의 대상이 된 사실에 주목했다.
코벤트리는 전후 완전히 파괴돼 껍데기만 남아버린 14세기 고딕 건축물(이던) 세인트 미첼 성당을 폐허 그대로 보존했다.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고 평화를 증진하기 위해서였다. 오히려 이 건물을 코벤트리 평화와 화해의 상징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1968년에는 존 레넌과 오노 요코가 이 성당에서 개최된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려고 방문하기도 했다. 코벤트리는 독일의 드레스덴 등 전세계에 비슷한 아픔을 겪은 도시들과 자매결연을 하고(코벤트리 시내 각지에는 이렇게 자매결연한 도시들의 이름을 딴 건물과 길, 공원이 많다. 이곳들을 이어 도시를 한 바퀴 돌아보는 평화산책길도 개발돼 있다) 코벤트리 대학 내에 평화와 화해 학과를 개설했다. 해마다 가을이면 시 주최로 평화 페스티벌이 한 달 동안 계속된다.
이렇게 평화의 도시 코벤트리에 살면서 나는 한국에서보다 훨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흥미로운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평화페스티벌 행사에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향하다 이스라엘의 총격으로 9명이 사망한 국제구호선 자유함대(Freedom Flotilla)의 생존자들, 3년 동안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갖은 고문에 시달렸고 현재는 이 수용소의 폐쇄를 위해 맹활약하고 있는 활동가를 만날 수 있었던 건 행운이다.
무엇보다 지금 나에게 코벤트리는 제2의 고향 같은 곳으로 기억된다.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서울엔 어린 시절의 상념에 젖어 영화 의 토토 ‘코스프레’를 할 공간을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나는 서울을 사랑하고 대도시가 주는 익명성과 개인주의가 어떤 면에선 매우 편리하고 푸근하다고 생각하지만 걸어서 충분히 도시 한 바퀴를 돌고도 남는 이 작은 도시에서의 1년은 또 다른 만족감을 주었다.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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