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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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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야후 웹툰

2000년대 초반 개성 강한 작가 발굴해 웹툰 새 지평 보여준 야후코리아 ‘카툰세상’
6월 말 서비스 종료… 21세기식 만화잡지 사라지다
등록 2012-06-26 14:10 수정 2020-05-03 04:26
마인드C 제공

마인드C 제공

운명적 만남은 동네 서점에서 이뤄졌다. 도서관에 가려면 지하철로 집에서 다섯 정거장도 넘게 가야 했다. 집에는 교훈적인 내용으로 목을 죄는 위인전과 동화책만 빼곡했다. 그리하여, 1993년 11살 어린이 S는 동네 서점을 도서관 삼기로 했다. 만화잡지 과 , 를 그곳에서 만났다. 동화책은 읽다 다시 자리에 꽂아뒀지만, 만화잡지만은 꼭 엄마를 졸라서 사왔다. 집에 쟁여두고 지난달 내용과 연결해서 봐야 했기 때문이다.

이말년·주호민 등 ‘웹툰 진주’ 캐내

시간이 흘러 은 1996년 폐간했고 주간지였던 는 힘을 잃고 2005년부터 격주간지로 모습을 바꾸었으며 는 올해를 기점으로 더 이상 오프라인 잡지를 펴내지 않는다. 만화 독자들은 만화잡지보다 컴퓨터 모니터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2000년대 초반 야후코리아 ‘카툰세상’은 개성 있는 작가들을 발굴하며 웹툰의 새 지평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제 갓 10년, 웹툰의 짧은 역사에서 야후코리아 웹툰은 아주 잠깐 반짝이는 별이었던 걸까. 웹툰 시장에서 한때 으로 기능했던 야후코리아 웹툰이 6월30일부로 서비스를 종료한다. 야후코리아에서 과 을 연재한 주호민씨는 트위터에서 “만화잡지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라고 썼다.

야후코리아에서 두 컷 만화 ‘2차원 개그’를 연재해온 만화가 마인드C씨는 두 달여 전 야후코리아로부터 전자우편을 한 통 받았다. 요지는 6월 말에 웹툰 서비스를 종료하니 마무리를 지어달라는 것. 일주일에 네 번씩 두 컷 만화를 업데이트를 하며 4년째 연재해온 마인드C씨는 가슴이 덜컹했다. ‘2차원 개그’를 평생 그릴 것이라고 다짐해온 터였다. 야후코리아가 평생의 연재처가 될 것이란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두 컷짜리 만화를 인정해주고 자유롭게 그리라고 배려해줬던 공간이 사라진다니 안타까웠다. 800번째 만화를 업데이트하던 6월7일, 독자들에게 다가올 이별을 공지했다. ‘2차원 개그’는 6월29일부로 813회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끝낸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며 인터넷 공간에서도 새로운 세기가 도래했다. ‘정문’이라는 뜻의 포털(portal) 사이트는 매달 사용료를 받던 PC통신과 달리 무료로 문을 개방했다. 온라인 만화의 시대도 포털 사이트 시대의 개막과 궤를 같이한다. 누리꾼들이 일상의 사소한 해프닝을 그려 온라인에 올리던 아마추어 형식의 카툰은 스크롤바의 움직임과 서사 구조를 연결한 형태의 웹툰으로 발전했다. 기존 출판만화 시장은 1970년대 검열의 칼날을 견뎌내다 1980년대 부흥을 맞고, 1990년대 출판만화계의 총체적 위기와 함께 무너져내린 터였다. 웹툰은 컷이 넘어가는 형태, 서사 구조 등 많은 부분에서 기존 만화와 성격을 달리하지만 그 등장과 함께 만화시장에 새로운 지형도를 그려넣었다.

야후코리아 ‘카툰세상’은 한국 만화시장의 새 지형에서 선두주자로 꼽혔다. 2002년 3월부터 만화 서비스를 시작한 야후코리아는 국내 인기만화 1천여 편과 시사만화, 플래시 애니메이션, 인터넷 전용 컬러만화 등 다양한 구색을 갖춰 만화시장의 포문을 열었다. 기존 작가층을 중심으로 서비스를 꾸린 초창기에는 온라인에서 종이만화를 볼 수 있다는 것 말고는 특이점이 없었다. 그러나 야후 웹툰은 곧이어 개성 있는 작가들을 발굴하는 장으로 기능했다. 1980~90년대 이며 가 있어 김수정·김동화·황미나·강경옥이 빛날 수 있었다면, 야후코리아 카툰세상은 양영순·이말년·주호민·기안84 등의 진주를 캐냈다.

독자가 야후코리아 카툰세상에서 연재됐던 웹툰 <열혈초등학교>를 보고 있다. 정용일 기자

독자가 야후코리아 카툰세상에서 연재됐던 웹툰 <열혈초등학교>를 보고 있다. 정용일 기자

자유와 방치 사이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2000년대 초반 야후코리아는 영리했고, 보는 눈이 있었다. 야후코리아를 통해 데뷔한 작가들이 다른 포털 사이트로 옮겨가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10년도 채 되지 못해 야후코리아는 그런 기민함을 잃었다. 그러는 통에 몇몇 작가들은 출생지를 잃게 생겼다. 야후코리아를 통해 정식 데뷔한 이말년씨는 “야심찬 출발이었다. 싹수 있는 작가를 많이 발굴한 사이트 아닌가. 내 경우만 해도 그렇다. 데뷔를 하지 못해도 이상하지 않은 만화였다. 야후코리아를 통해 제의를 받고 본격적으로 웹툰 작가로 일하게 되었는데, 아쉽다”고 전했다. 마인드C씨의 감정은 더욱 각별하다. 디시인사이드 사이트에 개인적으로 ‘수행록’을 업로드할 때, 가장 먼저 러브콜을 보낸 이가 야후코리아 웹툰 담당자였다. 마인드C씨는 “‘마인드툰’이란 작품으로 야후에서 데뷔했다. 4년째 야후코리아에서 연재 중인 ‘2차원 개그’는 대표작이자 애착이 많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작가들이 아쉬워하는 지점은 애틋한 이별의 정만이 아니었다. 마인드C씨의 말을 더 들어보자. “‘2차원 개그’를 처음 연재할 때, (지면 분량이 자유로운) 온라인에서 네 컷도 아닌 두 컷짜리 만화를 받아들여준다는 자체가 파격이었다. 야후코리아는 모든 권한을 작가에게 주는 연재처였다. 작가가 쓰고 그리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걸러지지 않은 표현으로 문제가 발생한 만화도 몇몇 있지만 순기능이 더 컸다. 왜 야후 웹툰을 떠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렇게 얽매이지 않고 무언가를 그릴 수 있는 공간을 얻기 쉽지 않다는 점을 간과한 질문이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작가 ㄱ씨가 말하는 맥락 또한 비슷하다. “표현의 자유를 허용해주는 공간이었다. 이렇게 자유분방한 곳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웹툰 담당자의 생각이었던 것으로 안다. 굳이 검열 기준을 마련하려고 들지 않은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편집자 부재는 웹툰의 약한 부분으로 꼽히지만, 개성 강한 ‘병맛’ 만화를 연재하던 이들에게는 반가운 공간이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자유가 아닌 방치에 가까웠다. 는 올 1월7일자 신문 1면에 2008년부터 야후코리아에서 연재된 를 대표적인 폭력 웹툰으로 지목했다. 만화를 그린 귀귀 작가는 “연재 중인 에서 내 생각을 밝히고 독자와 말할 것”이라고 했지만 보도 이틀 만에 야후코리아는 작가에게 당분간 연재를 중단하라고 통보했다. 개성 있는 작가군을 배출한 초반의 패기는 흐지부지했고 가 지목한 폭력성이 오도인지 진짜인지 가리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지키고자 하는 ‘야후코리아적인’ 색깔 또한 사라진 지 오래라는 것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독자들, 포털 웹툰 유료화 우려

6월부로 웹툰이 사라질 자리는 무엇으로 채워질까. 웹툰 연재가 끝나면 기존에 출간된 도서들을 중심으로 콘텐츠가 새로 꾸려질 예정이다. 현재 야후코리아 카툰세상 메인 화면은 연재 중인 만화와 연재 종료 만화, 새로 연재를 시작한 도서 스캔 이미지가 섞여 있다. 새로 시작하는 연재는 어린이 학습만화 , 실용서 , 소설 등이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재기발랄함을 기대하고 찾아오는 독자들에게 심지어 출판물의 편집으로 갈무리된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건 변화가 아닌 퇴행으로밖에 볼 수 없다.

야후코리아가 만화 서비스를 중단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야후코리아에는 현재 만화 업무 전담자가 없다. 그동안 업데이트가 늦어져도 감감무소식, 길게 이어질 줄 알았던 연재가 후다닥 끝나도 독자들에 대한 배려나 양해가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론 홍보 담당자와의 연결을 시도해봤으나 사흘째 부재 중이었다. 연락처를 남겼으나 반응이 없었다.

2000년대 중반 웹툰 시장은 다음-네이버-야후의 3강 구도를 그렸다. 이제는 네이버와 다음의 양강 구도다. 물량 면에서도 압도적이다. 네이버는 100편 이상, 다음은 70여 편의 만화를 연재 중이다. 그러나 두 사이트의 만화 담당자는 경쟁사의 웹툰이 문을 닫는 것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김준구 네이버 웹툰 서비스팀장은 “만화 콘텐츠 시장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다양한 시장 사업자들이 건재하는 환경이 형성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 웹툰 기획자 박정서씨는 “이제 막 파이가 커진 시장이다. 다양한 작가들과 접촉하려면 연재처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야후코리아 웹툰만 막을 내리는 게 아니다. 포털 사이트 가운데 무료 웹툰을 처음으로 제공한 파란도 7월 중으로 웹툰 서비스를 종료한다. 세고 실험적인 콘텐츠로 개성 있는 작품들을 쏟아내던 야후 웹툰은 저물었고, 가장 먼저 무료 서비스를 제공한 파란은 후발주자보다 먼저 문을 닫게 됐다. 주호민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이제 21세기식 만화잡지 둘이 사라져버린 지금, 앞으로 웹툰 시장 지형은 어떻게 그려질까. 독자들이 우려하는 점은 볼륨이 커진 만큼 유료화 전환이 시도되리라는 것이다. 웹툰은 포털 사이트의 트래픽을 높이는 중요한 수단이라 전격적인 유료화는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그러나 네이버에 앞서 다음에는 유료로 전환한 콘텐츠가 몇 있다. 연재 중인 작품은 무료 서비스를 지속하되, 종료된 작품에 한해 작가들의 뜻을 물어 유료 전환 혹은 무료 서비스 유지 여부를 결정한다. 다음 만화 기획자 박정서씨는 “유료화 전환 뒤에는 회사와 만화가가 1:9 정도로 수익을 나눠가진다. 연재 종료 만화의 유료화는 만화가들의 창작을 지원하려는 도구다. 연재를 하지 않는 기간에 수입이 지속되지 않아 만화가들이 안정적으로 차기작을 준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정한 방침”이라고 말했다.

사라진 야후 웹툰의 첫번째 얼굴

과 를 꼬박꼬박 사보던 어린이 S는 이제 서른 살의 기자가 되었다. S는 요즘 만화잡지를 사보기보다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편이다.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다음 웹툰 를 챙겨본다. 월요일 오전에는 토요일에 업데이트된 네이버 웹툰 를 본다. 뒤늦게 1회부터 정주행 중인 는 하루에 열 몇 개씩 몰아서 본다. 이동하는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잠들기 전에, 그리고 아침에 깨면 이불 속에서 눈만 꿈벅꿈벅하며 스마트폰의 스크롤을 내린다. 기사를 준비하며 야후 웹툰 를 볼 때는 여러 차례 웃음을 터트렸다. 일상에서 위로와 응원을 받지만 정작 ‘이럴 땐, 여기서, 이 만화’는 없다. 오늘 깔깔거리며 보았던 웹툰이 어느날 연재처를 잃어도 내일 다른 사이트에서 볼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런 와중에 야후와 파란, 이제 선발주자는 무대에서 사라졌고 네이버와 다음 두 개의 커다란 웹툰 백화점이 우뚝 서 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출판만화에서는 만화잡지만의 편집과 개성이 있었다. 수다한 만화들을 섞어 놓아도, 이것은 , 저것은 의 것 구분해 챙겨넣을 수 있었다. 에 실리던 만화가 이나 에 실리면 어색할 터였다. 그러나 스마트폰 속을 헤집으며 여기저기 만화를 기웃거리지만 연재처의 개성을 더 이상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아쉬워하는 것은, 야후코리아 웹툰의 첫번째 얼굴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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