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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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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카프카가 없어도

영화에 “우리 나중에 꼭 가자”고 썼던 체코 프라하,
카프카는 못 찾았지만 다시 그리워진 도시
등록 2012-04-20 17:12 수정 2020-05-03 04:26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흔적을 찾아 이송희일 감독이 누볐던 체코 프라하의 거리. 당시엔 실망했지만, 다시 환청이 들리듯 그리운 것은 왜일까. 사진 이송희일 제공.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흔적을 찾아 이송희일 감독이 누볐던 체코 프라하의 거리. 당시엔 실망했지만, 다시 환청이 들리듯 그리운 것은 왜일까. 사진 이송희일 제공.

몇 년 전 영화 를 들고 독일 베를린에 갔을 때, 독일 관객이 유독 이 대사에서 웃는 걸 보고 상당히 의아해했다. “우리 나중에 프라하에 꼭 가자”라는 대사였는데, 대체 왜 웃지 싶어 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곧 그 이유를 짐작했다. 만일 유럽 어느 나라의 연인이 오글거리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이런 대사를 쳤다고 치자. “우리 나중에 중국 베이징에 꼭 가자.” 맙소사, 지리와 문화의 상대성이라는 게 이렇게 웃음을 빚어낸다.

그럼에도, 난 고집을 부리듯 체코 프라하로 여행을 갔다. 같이 갈 연인은 없었지만, 배낭과 여전히 식지 않은 염원이면 충분했다. 프라하는 릴케와 쿤데라, 그리고 무엇보다 프란츠 카프카의 고향이 아닌가. 20대 초반에 카프카를 처음 읽기 시작하면서 마음속에 독초처럼 키운 그리움이 넉넉한 노잣돈 아니겠는가.

살아 있는 카프카를 찾기라도 할 듯이 도착하자마자 탐정 흉내를 내며 마이슬로바 거리에 있는 생가, 그가 다닌 독일 고등학교, 황금소로 22번지에 있는 집필실 등 닥치는 대로 흔적을 뒤쫓았다. 카프카 얼굴이 박힌 재떨이와 머그잔, 심지어 성냥통도 샀더랬다. 게다가 카프카가 산책하며 사색에 잠겼을 것 같은 카를교와 프라하 성곽 일대를 그림자 쫓듯 돌아다녔다. 밤늦은 시간에도 탐정놀이는 계속됐다. 그의 소설들 속에서 은밀히 연출되는 호모섹슈얼한 분위기를 추적하기 위해 프라하의 깊은 밤 속에 명멸하는 게이바들을 둘러보기도 했다.

그렇게 탐정놀이가 끝나고,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린 결론은 ‘실망’이었다. 프라하 어디에도 카프카는 없었다. 관광 특수 지역으로 설정된 프라그1·2지역만 마치 프라하의 전부인 양 과대 포장돼 있었다. 주변의 가난한 게토들을 감춘 채 반짝반짝 빛나는 쇼윈도의 도시, 그것이 전부였다. 친절하게 안내되는 카프카 여행 코스는 자판기 커피처럼 싱거웠다. “우리 나중에 프라하에 꼭 가자”라는 오글거리는 대사를 영화 속에 집어넣은 내 자신을 책망하며, 집에 오자마자 기념품들을 내팽개쳤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난 뒤 어느 날 밤, 내 귀에 들리는 환청. 또각또각, 그건 포도(鋪道)를 밟는 구두 소리였다. 유럽에서 길에 가장 많은 돌이 깔린 프라하는 돌의 도시다. 특히 밤이 되면 더욱 밤의 정적을 꿰뚫고 솟아나던 그 유령 같은 발자국 소리들. 의 요제프K를 경찰들이 잡으러 올 때도 저 소리였을까? 영원할 것처럼 주위를 맴돌던 측량사K의 발자국 소리도 저랬을까?

왜 난데없이 프라하에서 들었던 그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걸까? 시껍하게 내팽개쳤던 프라하에 대한 기억의 막을 뚫고 또각또각, 내게로 걸어오는 저 소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문뜩, 그 순간부터 프라하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 어디에도 없던 카프카,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 그리워진 비의의 세계는 발자국 소리로 저 먼 곳에서 손짓하고 있었던 것이다. 변덕스럽게, 심장이 또 뛴다. 젠장, 언젠가 애인이 생기면 또 이렇게 주책맞게 고백할지 모르겠다. “우리 나중에 프라하에 꼭 가자.”

이송희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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