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가을, 독일에서는 얇은 시집 두께의 철학책 한 권이 서점가를 강타했다. 출간 2주 만에 1쇄가 완판될 정도로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한국 출신의 철학자 한병철 교수(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학)의 (한국어판 문학과지성사 펴냄)다. 독일의 주요 신문과 방송들은 이 책을 비중 있게 다루었는데, 일간지 은 지난해 10월2일치에 저자의 철학적 경로를 조명하는 특집 기사에서 그를 새로운 종류의 문화비평가로 묘사했다. ‘피로사회’라는 단어가 상용어가 될 정도로 독일 사회에서 저작이 일으킨 파장은 컸다. 무슨 이야기가 담겼기에 이 짧은 에세이는 이토록 주목받았던 것일까.
긍정성 과잉이 개인을 착취한다
첫 문장은 이렇다. “시대마다 그 시대의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이를테면 항생제의 개발로 종언을 고한 박테리아의 시대가 있었고, 그다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대대적 확산이 우리를 공포에 떨게 했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21세기를 지배하는 주요 질병은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다. 대신에 그는 신경증을 꼽는다. 예컨대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 같은 것들.
바이러스적 질병이 몸에 들어온 이질적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면역될 수 있다면, 21세기 초의 신경증적 질병은 뚜렷이 제거할 대상이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에 따르면 지난 세기는 면역학적 시대였다. 안과 밖, 친구와 적, 나와 남 사이에 뚜렷한 경계선이 그어진 시대였던 것이다. 아무런 위험을 초래하지 않아도 타자라는 이유, 이질적 존재라는 이유만으로 제거 대상이 되는 시대였다. 그러나 냉전이 종식되며 이런 면역학적 도식은 옅어지기 시작한다. 새로운 구도는 이질성과 타자성의 소멸을 두드러진 특징으로 한다. 이를테면 세계화가 진행되고 삶의 모든 영역이 울타리를 넘어서며 서로 뒤섞이는 이 시대는 더 이상 면역학적 패러다임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전의 사회를 자아와 타자 사이의 적대성 내지는 부정성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냉전·면역학·규율사회)로 정의하고, 현재는 부정성 대신 긍정성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일컫는다. 그는 이 새로운 사회를 ‘성과사회’라고 말하며 이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을 ‘성과주체’라고 이름 지었다. 성과사회는 ‘할 수 있다’는 것이 최상의 가치가 된 긍정의 사회다. 긍정의 가치는 쉬이 과잉돼서 과잉생산, 과잉가동, 과잉 커뮤니케이션 따위를 초래한다.
그렇다면 긍정성이 과잉된 사회에서 인간은 왜 신경증적 질병에 시달리게 되는 걸까. 그에 따르면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 개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울한 존재가 되기 싶다. 저자는 성과사회를 자본주의 시스템의 진화가 낳은 결과로 해석한다. 더 큰 성과를 올려서 더 큰 성공을 거두라고 부추기는 자본주의 사회는 개개인의 욕망을 부추겨 생산성의 극대화를 꾀한다. 성공을 추구하는 성과주체에 의해 자본주의에서 개인은 자발적 착취 양상을 띠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자 주권자다. 그러나 지배적 존재가 사라진 대신 개인은 스스로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과다한 노동을 자발적으로 꾀하게 되고,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게 된 주체는 파괴적 자책과 자학을 하게 된다. 저자는 이런 상태에 도달한 개인을 자기 자신과의 전쟁 상태에 있다고 말하며, 현대사회의 우울증 환자를 내면화된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과 같다고 비유한다. 더불어 이전 시대와 비교해 이렇게 말한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성과주의적 집착을 억제하는 피로
저자가 말하는 성과사회의 모습은 한국의 현실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예컨대 TV만 켜면 쉬이 볼 수 있는 ‘생각대로 하면 된다’고 노래를 부르는 광고, 고객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해주겠다는 광고 등을 떠올려보자.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를 강조하며 성공을 설교하는 자기계발서나 처세 관련 책은 또 어떤가.
저자는 긍정성 과잉 사회에 맞서는 것으로 사색하는 삶을 제시한다. 신경증에 대한 처방으로 심심함과 피로의 가치를 역설한 주장 또한 흥미롭다. 성과사회에서 피로란 떨쳐내거나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진다. ‘탈진의 피로’는 사람들을 개별화하는 고독한 피로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피로란 과잉활동의 욕망을 억제하고, 성과주의적 집착을 완화하는 활동이다. ‘부정적 힘의 피로’는 무장을 해제하고 태평함에 자리를 내준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태평한, 무위의 능력을 가진 피로를 통해 우리가 성공을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데서 벗어나 타자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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