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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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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공화국을 읽다

그것은 자유의 상징, 소비주의 욕망의 지존, 행복의 심장부였다
자동차로 미국의 문화와 역사를 들여다본 강준만의 <자동차와 민주주의>
등록 2012-03-08 11:23 수정 2020-05-03 04:26

1994년은 미국 정치사에서 역사적인 해였다. 그해 11월 치른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민주당을 꺾고 다수당이 되었다. 하원에서 공화당 다수 체제를 구축한 것은 40년 만의 대사건이었다. ‘미국과의 계약’이라는 보수주의 공약을 내걸고 공격적으로 유권자를 파고든 뉴트 깅리치 당시 하원 의장의 전략이 먹혀든 덕이다. ‘보수주의자들의 쿠데타’ ‘깅리치 혁명’ 같은 말이 신문 지면을 채웠다. 그런데 모두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이 역사적 파장의 배후에는 또 다른 존재가 있었다. 바로 자동차다.

자동차에 대한 미국인들의 열망은 19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다. 1908년 최초로 대중화된 자동차 모델 T. 인물과사상사 제공

자동차에 대한 미국인들의 열망은 19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다. 1908년 최초로 대중화된 자동차 모델 T. 인물과사상사 제공

정권을 바꾼 자동차 라디오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인물과사상사 펴냄)에서 미국의 역사를 굴려온 자동차가 정권의 변화에도 영향을 끼쳤음을 지적했다. 맥락은 시간을 거슬러 1954년에서 출발한다. 그해 5월17일 연방대법원은 그동안 미국의 백인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졌던 분리정책을 깨고 교육 시설의 분리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엉뚱한 사회 현상을 낳았는데, 인종 간 거주 분리를 지지해온 이들의 도심 탈출이 가속화한 것이다. 도시는 슬럼화했고, 교외는 비대해졌다.

그럼 교외화와 정권 변화의 연결 고리는 무엇일까. 2000년대까지 지속된 교외화로 미국인은 하루 평균 2.6시간을 운전한다. 계산하면 1년 중 2개월을 꼬박 운전에 바치는 셈이다. 지루한 시간, 운전자들은 즐길거리가 필요했다.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장비가 발달했지만 구관이 명관인지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라디오였다. 운전자들은 라디오 토크쇼 듣기를 즐겨했다. 보수 진영은 라디오를 자신들의 출구로 적극 활용했다. 라디오 토크쇼는 ‘편향적 독설 잔치’를 벌였는데, 이는 오히려 인기 폭발의 주된 이유가 되었다. 운전대를 잡고 지루하게 교외를 향해 달려나가던 미국의 중산층 유권자들은 공화당 지지 논리에 그렇게 사로잡혀갔던 것이다.

미국 교외 주거지의 발달은 백인들의 인종차별주의가 촉발했지만, 더 근원에는 다시 자동차가 있다. 자동차는 그 역사의 시작부터 미국과 미국인을 움직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의 첫 자동차(1886년 다임러와 벤츠가 각각 발명한 가솔린 엔진 구동 자동차)는 독일에서, 첫 대규모 생산 체제는 프랑스에서 갖췄지만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국’이라는 타이틀은 미국에 돌아갔다. 1904년의 일이다.

1896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헨리 포드가 최초의 포드 자동차를 거리에 끌고 나온 이후, 초기 자동차는 위화감을 조성해 사람들의 반감을 샀지만 소유욕의 대상이 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많은 자동차 다큐멘터리영화와 자동차를 주제로 한 노래가 유행했다는 사실은 당시 대중의 열망을 반영한다.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를 도입한 포드에서 1908년 헨리 포드는 모델 T의 가격을 인하하며 “자동차를 사기 위해 부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동차를 사야 한다”고 부추기며 자동차의 대중화를 불렀다. 미국인들의 자동차 보유 대수는 1920년 1천만 대에 육박했는데, 이는 당시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 자동차 수를 합한 것보다 더 많았다. 미국인들은 노골적으로 자동차를 사랑했다. ‘포드 자동차를 사주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을래요’ ‘뷰익을 타고 신혼여행 가요’ 같은 특정 자동차를 찬양하는 노래는 광고가 아니라 1920년대 미국의 인기 가요였다. 넘치는 자동차 사랑은 집 구조도 바꿔놓았다. 사람들은 차고를 통해 집 안팎을 드나들었고, 차고는 현관이자 응접실 역할을 대신하며 집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자동차·정유·타이어 회사는 손잡고 대규모 로비 군단을 조직해 연방정부와 주정부에 도로를 건설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도로의 발달로 자동차는 미국인들의 일상에 더 깊이 파고들었다. 미국인들은 먼 거리를 차를 타고 이동해 마트에서 장을 보고, 드라이브인 패스트푸드점을 이용했다. 자동차를 탄 채 예배를 보는 교회도 생겨났다. 자동차가 없으면 꼼짝할 수 없는 유별난 교통 시스템이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대중교통을 저열한 것으로 인식했다. 1991년 이란 책에 소개된 한 대중교통기관 관리의 말이 이를 반영한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도 정기적으로 버스를 타는 사람은 인생의 ‘루저’다.”

<자동차와 민주주의>

<자동차와 민주주의>

신앙이 된 자동차

강 교수는 자동차에 대한 인식은 유사 이데올로기라 해도 좋을 정도로 한 국가의 중심적 가치를 대변해왔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자동차는 △거대한 국토를 재발견하는 수단 △국가적 자부심 상징 △공동체 의식 재편성 기제 △지위 구별짓기 수단 등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자동차 산업이 쇠퇴 일로를 걷고 있지만 자동차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앙은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에게 자동차란 갈수록 왜소해지는 인간의 마지막 피난처이기 때문이다. 유달리 스포츠실용차(SUV)를 사랑하는 미국인들은 높은 시선으로 일반 승용차들을 내려다보며 권력 의지를 만끽하고, 더 크고 강한 차를 원하며, 위급 상황시 차 안에 있는 본인만 안전하면 된다는 이기주의에 젖어들며 자동차에 대한 사랑을 결코 멈추지 않으리란 것이다. 자동차를 통해 미국을 읽는다면, 이런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로 군림하는 사회를 우리는 과연 어떻게 읽어야 할까. 강 교수는 물음표를 던지며 글을 맺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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