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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기획

남자들은 왜 ‘시가’에 빠져들었나

그들이 ‘시크릿 가든 증후군’을 앓는 이유…
허세 작렬 대사의 행간에 숨은 김주원의 시심·고독·순수

제845호
등록 : 2011-01-19 15:02 수정 : 2011-01-20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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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아내 때문에 <시크릿 가든>을 봤다. 장관은 드라마 밖에서 펼쳐졌다. 족발을 한 손에 들고 소주를 들이켜면서 아내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드라마를 눈요기 삼던 ‘그 남자’는 감탄한다. 그리고 빠져든다. “현빈(극중 김주원)의 대사가 예술이더라고요. ‘당신 꿈속은 뭐가 그렇게 험한 건데’ ‘꿈속에 당신이 있거든’ ‘나랑은 꿈속에서도 행복하지 않은 건가’ ‘그래두 와라, 내일도 모레두’라든지, 갑자기 찾아온 남자에게 여자가 ‘왜 왔어?’ 묻자 ‘네가 여기 있잖아’라고 답하는 거라든지.” 이렇게 ‘그 남자’는 아내의 ‘통곡’을 비웃으면서도, 대사를 다 외우고 다닌다.

시크릿 가든

관습을 뛰어넘는 ‘사회지도층의 윤리’

남자들은 들켰다. ‘시크릿 가든 갤러리’에 이런 글이 올랐다. “난 남자들이 이 드라마에 빠졌다는 게 너무 웃겨.”(닉네임 ‘히히’) “내 주위의 남자들이 이 드라마 꼬박꼬박 챙겨보고, 심지어는 못 보면 줄거리 어떻게 됐냐고 물어보고 다운받아서 보고 이런 거 보니까. 와… 나;;;진짜 웃기고 재밌드라.ㅋㅋㅋㅋㅋㅋㅋ 그것도 20대 중반 넘은 인간들이.ㅋㅋㅋㅋ 남자들 코드에도 나름 잘 맞나봐.ㅎㅎㅎ. 듣자하니 군대에서도 챙겨본다고까지 하더라고.ㅋㅋㅋ” 글에 대한 답글로 갤러리에서 ‘커밍아웃’한 남자들은 하지원 때문에 본다고도 했고, ‘김사랑의 보디’ 때문이라고도 했다. 닉네임 ‘어허이’는 “남자들은 롤모델을 보고 학습 중”이라고 이유를 댔다.

명백하게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 <시크릿 가든>은 어떻게 남자를 잡아끄는가? 분명한 ‘남성성’이 개입하기도 한다. 트위터 아이디 @elvisoon은 드라마가 방송되는 시간에는 실시간으로 트위터에 대사를 쳐올린다. 아내가 재밌다고 해서 보기 시작했다. 아내가 ‘꺄악’ 하고 소리를 지르는 부분의 대사를 트위터에 쳐올렸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6천~7천 명이던 폴로어도 2천 명이 더 늘었다. 늘어난 폴로잉의 “99%가 여잡니다”. 그가 꼽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대사는 “지금 당장 하네다로 전세기 띄워”다. 그는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아요. 로엘 김 사장이 여자에게 거칠게 대하는 나쁜 남자잖아요. 현실에선 그렇게 해서는 연애를 못하지요. 그리고 하네다로 전세기를 띄우는, 그런 현실에선 불가능한 행동을 하니까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작업’ 대사를 줄줄 외자 아내가 “누구한테 하려고 그러냐”고 핀잔했다. 그는 “보는 것을 들키는 건 부끄럽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렇게 철저한 ‘남자’다.

소설가 김중혁은 <시크릿 가든>이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스턴트 장면이 꽤 나오는 전문직 드라마”라고 강조한다. 그는 “기존의 (유치하다고 생각했던) 연애 드라마의 관습을 뒤집는 데서 오는 ‘쾌감’ 같은 게 있어서 큭큭거리며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청년 사회주의자’ 조윤호는 굉장히 불쾌한 장면도 있지만 자신을 감추지 않는 부자를 볼 수 있어서 흥미롭게 <시크릿 가든>을 본다. “김주원은 재벌 특유의 이상한 생각들을 그대로 이야기한다. 자기 입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이야기하는데, ‘외설적’이라는 느낌까지도 든다. ‘사회 지도층의 윤리’ ‘불우한 이웃의 윤리’라는 게 그것밖에 안 된다는 걸 보여주면서 말은 그렇게 하는 점이 재밌다.” 영혼이 바뀌는 장치에서도 ‘역설의 재미’가 느껴진다. 영혼이 바뀐 길라임(하지원)이 사장이 되어 출근할 때 인사를 받아준다. “김주원은 자신의 부를 쌓기 위해서 열심히 일해주는 노동자들의 인사도 받지 않는다. 그런데 길라임이 인사를 받아주자 노동자들은 이상하다고 여긴다. 노동자들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 하는 노동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해피엔딩을 바라지 않는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을 드러냈으면 한다. “문분홍 여사가 말하지 않나. ‘네가 여태까지 기득권을 누린 게 얼만데.’ 김주원이 내려오지 않는 이상, 길라임이 올라가야 하는데, 둘 다 불가능하다. 그것을 비극적으로 드러내야 할 것 같다.”


이 대사 최선입니다, 확실해요

‘그 남자’들이 <시크릿 가든>을 보는 이유로 대사‘빨’(이런 ‘천한’ 말이라니, 김 사장 미안하다)은 빠지지 않는다. 길라임은 솔직하고 정직함으로 ‘환상적인 밀당(밀고 당기기)’을 펼치고 오스카(윤상현)의 능청스러운 대사도 사랑받았지만, 김주원의 대사에는 허세와 우아가 섞인 ‘독보적 존재감’이 있다. 원래 김주원의 ‘순발력’은 대단하다. 액션스쿨에 합격한 게 순발력 때문이다. 길라임이 치려고 발을 내밀 때 맞지 않으려고 뒤로 발을 딛는 그런 순발력이 아니라 ‘받아치는 재치’다. “~하는 사람이라고, 내가” “돈 잘 법니다. 돈 많습니다. 돈 잘 씁니다.”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등의 유행어를 비롯해 “키 커 보이려고 머리를 붙이고 다니냐”는 타박, “미스코리아 못 나가겠네” 하는 돌려 말하기, “인종, 종교, 성격, 피부 색깔, 취향에는 관대해도 빈티 나는 건 용서가 안 되거든”이라는, 못하면 덜 미울 저주스러운 속사포까지.

12살 때부터 미학을 공부한 김주원은 ‘악어의 눈물’ 같은 인문서를 읽으며 아이러니한 재벌 3세를 조합해낸다. 가장 의아스러운 것은 ‘멜랑꼴리’다. 김주원은 시를 쓴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못 살게 구는 오후다. 그쪽이 이 편지를 볼 때도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이런 오후였으면 좋겠어. 그래서 내가 봤던 걸 그쪽도 봤으면 좋겠어”라고 편지를 쓴다. 이런 말도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이란 질환이 있다. 망원경을 거꾸로 보는 듯한 신비한 시각적 환영 때문에 매일매일 동화 속을 보게 되는 신비하고도 슬픈 증후군이다. 내가 그 증후군에 걸린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왜 저 여자와 함께 있는 모든 순간이 동화가 되는 걸까?”

김주원의 순발력이 길러진 곳은 아마 그의 서재일 것이다. 어떤 드라마(<매리는 외박 중>)에서는 서점을 수목원이라고 했다. 김주원은 폐소공포증이다. 사방이 탁 트인 곳Red을 좋아한다. 하지만 한쪽 벽면을 지붕까지 닿는 책장으로 ‘답답하게’ 채워넣었다. 책장을 벽으로 여기면 불가능한 일이다. 김주원은 시를 읽고 <천재토끼 차상문>을 읽고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를 읽는다. 길라임의 형상이 그의 독서를 방해하기도 하지만, 마음의 풍경이 ‘글자’로 돋아나기도 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 가슴속을 누가 걸어가고 있다…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너는 잘못 날아왔다”처럼 시집 제목이 시처럼 열거되었고, “동화처럼…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처럼 소설과 시 제목이 얽혀서 떠오르기도 했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를 쓴 소설가 김도언은 “문학성이나 작품성으로 널리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대중매체의 영향력으로 전파되는 거라서, 문학의 위의가 대중매체에 종속되는 현상인가 싶기도 해서 당황스럽다”면서도 김주원의 캐릭터를 이렇게 분석했다. “기존 드라마 속의 재벌이나 부유층은 성찰하지 않는다. 이번 드라마에서 김주원은 책에서 모종의 삶의 태도를 배우는 사람인 것 같다.” 소설가는 책장 주인을 이렇게 표현한다. “김주원은 외로운 사람이고, 단자화된 사람이다. 단자화된 개인의 숙명적인 고독이 느껴진다.”

경제학자 우석훈(2.1연구소 소장)은 <한겨레> 칼럼을 통해 지난해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일로 <시크릿 가든>을 들었다. 그는 “시집을 들고, 시가 가득히 꽂혀 있는 책장을 동경하는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10년을 맞게 되었다”고 했다. “이 시대 최고의 불온문서”인 시집을 읽기 시작하면서, 보온병과 불도저의 시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시심이 시대를 구원할 것이란 믿음

‘시크릿 가든 증후군’이라고 할까. ‘그 남자’들은 이 로맨틱 코미디를 얼떨떨해하고 신기해한다. 더 가면 ‘딱 미친 놈’이다. ‘부끄럽지만’ 그 남자들이 순수한 사람이라서인 것 같다. 나쁜 남자도 시심이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 그 세계에서는 돈 꺼내놓고 몽둥이질하는 일 없이, 번개 맞아 서로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이 그곳에는 있다. 그렇게 남자들도 ‘시크릿 가든’에 서 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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