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스페인 수교 60주년을 맞아 ‘전복의 상상, 상상의 전복: 프랑코 정권기 스페인 걸작선’을 선보였다. (1960), (1966), (1975) 등 카를로스 사우라(78) 감독의 작품 3편이 같은 섹션에서 상영됐다. 부산을 방문한 사우라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 최고의 ‘연예인’이었다. 상영장은 만석이었고 이어진 감독과의 대화에서도 자리를 뜨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다. 다음 상영을 위해 극장을 비워야 한다는 안내가 나가기까지 문답이 이어졌다. 감독의 인생을 듣는 ‘마스터클래스’ 행사장인 그랜드호텔도 창문가에 걸터앉은 사람들이 넘칠 정도로 만원이었다. 빨간 웃옷을 입고 빨간 카메라를 목에 건 그는 노래하는 듯한 스페인어로 농담을 섞어가며 유쾌하게 사람들을 만났다.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의 기자회견, 관객과의 대화, 마스터클래스의 문답을 정리했다.
프랑코 정권 때 탄압을 받지 않았다면 어떤 영화를 만들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당시 대화 하나, 동작 하나까지 간섭을 했다. 나름대로 꾀를 낸 것이 시나리오는 무사통과될 수 있도록 만들고는 촬영장에서 정말 원하는 것을 찍는 것이었다. 정부 검열기관에서는 데뷔작 시나리오의 60쪽을 자르라고 했다. 전체 분량은 100쪽이었다. 담당자를 만나러 갔는데 총을 책상에 올려놓고는 들었다 내렸다 하며 겁을 주었다. 중요한 것은 을 내가 원했던 그대로 촬영했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용감할 수 있었던 것은 해외에서 인정해주는 행운을 얻어서였다.
어떤 비평가가 내 영화가 비판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다. 대놓고 비판하지 못하는 것이 시대 분위기였다. 그리고 스페인에는 은유와 비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문화 전통이 있다. 영화를 쉽게 만들었다는 비판은 부당하다. 거저 얻는 것은 없다.
당신이 영화를 만들던 때와 많이 달라졌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집중력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호소하는 영화 관계자들도 있다.
=젊은 시절 카메라는 꿈같았다. 촬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었다. 내가 맨 처음에 만든 영화는 다큐멘터리였다. 친구와 스페인의 포앵카 지역을 여행하면서 리플렉스 카메라로 여정을 찍었다. 영화를 찍고 싶다면 당장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가라. 좋은 카메라가 없어도 된다. 아무거나 들고 나가라.
디지털은 장점이 훨씬 많다. 예전에는 촬영할 때 카메라감독의 눈에 의지해야 했지만 지금은 모든 스태프가 모든 신을 같이 본다. 예전에는 편집을 하려면 5~10일씩 기다려야 했지만 지금은 바로 편집하고 음악까지 넣어서 볼 수 있다. 예술가의 재능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기술적인 부분이 해결됐으니 이제 문제는 상상력이다.
최근 영화 는 종합예술인 오페라를 종합예술인 영화로 옮긴 것이다. 옮기면서 어디에 초점을 뒀나.=작품을 완성시키는 과정에 중점을 뒀다. 댄서 섭외부터 안무를 짜고 올리기까지의 과정 등 말이다. 오페라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 목적이다. 창작활동은 항상 수수께끼다. 무의 상태에서 어떻게 그런 그림이 나오는지 궁금했기에, 40여 편의 영화를 만드는 힘든 일을 계속해올 수 있었다.
영화를 다시 보지 않는다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작품을 만들고 나면 관심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한번은 계약을 할 때 ‘작품을 만든 이후 연락하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넣으려고 한 적도 있다. 제작 과정에서 충분히 영화를 즐긴다. 모든 감동을 다 받고는 마무리를 한다. 그래서 완성된 영화를 볼 필요가 없다.
이번에 도 35년 만에 처음 봤다. 다시 보니 내가 만든 작품인가 싶다. 뿌듯한 장면도 있고, 왜 저렇게 찍었을까 싶은 장면도 있다. 인생은 영화 같다. 그때 그 영화가 만들어졌다면 그걸로 끝이다.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여러 번 변한다. 그때 그 영화가 만들어졌다면 그 순간에 필연적이었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인생도 만족하면서 살고 싶다. 내일 당장 교통사고가 나서 죽을지 모르는데 하루하루 즐기기면서 살아야지. 살아 있고 건강하다면 됐다. 나에게 매 순간이 선물이다. 애들 쓰는 유행어로 ‘아님 말고’다.
부산=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