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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책] ‘수줍은 암컷’은 없다



다양한 문화권과 동물 사회 분석해 남성 중심의 모성 담론 해체한 <어머니의 탄생>
등록 2010-07-03 15:26 수정 2020-05-03 04:26
〈어머니의 탄생〉

〈어머니의 탄생〉


세라 블래퍼 허디 지음, 황희선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4만3천원
 

은 미국의 인류학자 겸 진화생물학자 세라 블래퍼 허디(64·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명예교수)가 1999년에 내놓은 저작이다.

20대에 영장류 사회생물학에 발을 디딘 허디는 1977년 박사 논문을 책으로 묶은 을 발표했는데, 이 책은 암컷의 관점을 다윈주의에 ‘추가’해 진화론을 양성 모두로 확장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남자들만 그득하던 생물학계에 여성의 시각을 새겨넣은 허디는 그 자신을 ‘다윈주의 여성주의자’로 자리매김한다.

여성의 자기희생적 억압은 근대의 아이러니

다윈주의의 비조 찰스 다윈은 ‘성선택’ 이론에 자신이 살았던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남성들의 가부장제적 관점과 도덕론자들의 희망 사항을 여과 없이 포함시켰는데, 곧 ‘수줍은 암컷’론이다. 허디가 1981년에 낸 책 는 자연계의 암컷 영장류들이 ‘능동적인 전략가’로서 경쟁적이며 성적으로 독단적이기까지 하다는 것을 입증해 다윈주의의 ‘수줍은 암컷’론을 이론적으로 폐기시켰다.

은 그 문제의식의 연장선에 있다. 여성 역시 (남성과 마찬가지로) 성적 욕망과 이해관계에 밝은 ‘능동적인 전략가’라는 관점을 통해 그가 깨뜨리려는 것은 다윈 이래 남성 중심 사회에서 축조돼온 모성 신화다. 모성 신화는, 어머니는 자식에게 전적으로 희생적이라는 관점 아래 자녀 양육의 책임을 오롯이 여성에게 전가하는 ‘모종의 정치적 함의’를 띨 뿐 인류사적으로 사실이 아니며, 인류 진화의 길에 선행했던 영장류에게도 사실이 아님을 드러낸다. 허디는 현대 도시 사회와 남미·아프리카 부족 등 다양한 문화권의 인류 집단과 함께 영장류 등 ‘동물 사회’를 분석해 기존 모성 담론을 해체한다.

허디는 ‘자기희생적인 어미’는 특수한 경우일 뿐이며, ‘일하는 어머니’는 인류사에서 현대에 등장한 새로운 존재가 전혀 아니라고 말한다. 인류 이전에도 영장류 어미들은 이런 ‘이중 임무’ 어미로 살아왔다. 현실의 어머니들은 긴 인류사 속에서 언제나 생계(일·야망)와 양육(번식·모성)을 수행해왔으며, 또한 인류는 양육을 줄곧 여성노동만이 아니라 남성노동, 가족노동 등 ‘협동노동’을 통해 책임져왔다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인간은 본디 협동해서 번식하는 종이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허디는 ‘최근’ 들어 아이를 양육하는 공간(집)과 야망을 실현하는 공간(일터)이 분리됨으로써 양육과 일 사이에 더 큰 긴장이 만들어졌을 뿐이라고 말한다. 여성을 억누르는 더 커진 긴장은 역설적으로 근대의 산물인 셈이다. 이 긴장을 더 증폭시킨 것은 20세기 진화심리학자 존 볼비의 ‘애착이론’인데, 인간 아기가 일차적 애착을 형성한 존재는 어머니이므로 아기 보살핌은 어머니만이 할 수 있다는 담론이다. 허디는 이 애착이론을 강하게 반박한다. 아기를 돌보는 보살핌 행위 자체가 애착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어머니만이 아니라 아버지 역시 갓난아기의 적절한 ‘돌봄인’이 될 수 있으며, 돌봄의 ‘본능’이 인간 남성을 포함한 영장류 수컷의 마음속에 잠복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아버지와 자식의 애착 등 여러 사례로 보여준다.

돌봄 본능은 남성에게도 잠재

출산한 여성들은 애착이론의 포화 속에서 직장으로 돌아갈지, 집에서 아이의 애착에 호응할지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는데, 허디가 취하는 관점은 ‘야망이 모성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을 하며 야망을 품는 것이 ‘좋은 어머니’가 되는 데 본질적이라고 그는 말한다.

허디의 ‘모성 신화’ 허물기는 기본적으로 그 방법론인 진화생물학의 자장 안에 있다. 인류학 연구자인 옮긴이가 썼듯이 “여성을 가두는 특정한 모성 개념을 전복했지만, 여전히 여성을 어머니로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여성주의 문제의식을 충족시키진 않는다. 그렇기에 더욱, 인간과 영장류·포유류를 같은 맥락에 놓고 접근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론자나 여성주의 옹호자에겐 이 방대한 책이 필독서가 될 것 같다.

 

허미경 기자 한겨레 문화부문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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