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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책] 동서양 철학자들의 일대일 대결



2500년 철학사의 주요 철학자 100여 명이 논리의 일합을 겨루는 <철학 vs 철학>
등록 2010-07-03 15:23 수정 2020-05-03 04:26
〈철학 vs 철학〉

〈철학 vs 철학〉

 


강신주 지음, 그린비 펴냄, 3만5천원

강신주(43)씨가 쓴 은 동서양 철학을 아우른 일종의 철학사 책이다. 독특한 것은 2500년 철학사의 주요 철학자 100여 명을 쌍으로 등장시켜 이들을 대결시키는 방식으로 철학의 역사를 포괄했다는 점이다. 서양 편에서 ‘플라톤 대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카를 슈미트 대 조르조 아감벤’까지 불려나오는가 하면, 동양 편에서는 인도·중국·한국·일본의 주요 철학자들이 논리의 경연장에 나와 일합을 겨룬다.

나무의 철학과 리좀의 철학

동양과 서양이 만나 대화하는 서술 방식의 한 사례로 ‘왕필 대 곽상’ 편을 들 수 있다. 이 꼭지는 질 들뢰즈의 철학에서 먼저 시작한다. 들뢰즈는 나무 이미지가 주류를 이루는 철학사에서 예외적으로 리좀(뿌리줄기) 이미지로 사유한 사람이었다. 들뢰즈는 에서 리좀과 나무를 이렇게 구별한다. “리좀은 출발하지도, 끝에 이르지도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중간에 있으며, 사물들 사이에 있는 ‘사이’ 존재이고 간주곡이다. ‘나무’는 친자관계를 이루지만, ‘리좀’은 결연관계를 이룬다.”

나무 이미지는 뿌리부터 가지 끝까지 위계와 서열과 계통의 체계, 곧 아버지-아들-손자로 이어지는 수직 계열을 보여준다. 이와 달리 리좀 이미지는 대나무 뿌리나 잔디 뿌리 같은 뿌리줄기들이 서로 만나고 얽히는 무한한 평등 관계의 연속일 뿐이다. 이어 지은이는 위진남북조 시대의 요절한 천재 왕필(226~249)의 철학을 설명한다.

왕필은 노자 철학의 대가다. 지은이가 보기에 왕필의 주석은 들뢰즈가 말한 ‘나무 이미지’를 그대로 구현하고 있다. 왕필의 사유는 ‘본말의 형이상학’이라고 불리는데, ‘본’ 곧 뿌리에서 시작해, ‘말’ 곧 가지로 끝나기 때문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개체는 가지와 같고 이 개체들은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기원하므로 결국 가족적 관계를 이룬다. 이때 왕필은 ‘없음’(무위)이 뿌리이며, 그 뿌리에서 ‘있음’이 자라난다고 본다. 군주가 뿌리의 자리에 들어가서 고요함의 자세를 지키는 무위의 정치를 해야 한다는 정치철학이 여기서 도출된다. 본말의 형이상학은 일종의 부드러운 지배의 철학인 셈이다.

그런데 세계를 나무 이미지로 이해한 대표적인 철학사상을 꼽으라면, 인도의 철학을 들 수 있다. 고대 인도의 종교 문헌이 베다이고 이 베다 중에서 철학적 사유 부분을 묶은 것이 다. 따라서 야말로 고대 인도 사상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의 권위를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인도에서 정통과 이단을 가르는 중대 기준이다. 그러면 의 핵심 가르침은 무엇인가? 그것은 ‘범아일여’와 ‘윤회사상’으로 요약된다. 여기서 ‘범아일여’는 브라흐만(범)과 아트만(아)이 하나라는 주장인데, 이것을 거꾸로 선 나무로 설명할 수 있다. 하늘에 뿌리를 둔 브라흐만이라는 나무에 수없이 뻗어 있는 잔가지가 아트만인 것이다. 는 아트만이 윤회의 고리를 끊고 브라흐만과 하나가 되는 것이 해탈이라고 가르친다.

사상에 반기 든 불교

이 우파니샤드 사상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나온 종교 사상이 불교다. 붓다(사진)의 가르침의 핵심은 브라흐만도 아트만도 본디 없다는 ‘무아’(無我) 사상에 있다. 이 무아의 논리를 극한에서 구현한 사람이 인도의 나가르주나(용수·150~250)다. 나가르주나의 사상은 ‘공’(空)이란 말로 집약되는데, 이 공으로써 그는 “불변하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체계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공 사상을 밀고 나가면, 모든 것은 인연(가까운 원인과 먼 원인)에 따라 임시적으로 생겨나고 다시 흩어질 뿐이다.

나가르주나의 공 사상은 중국 불교로 이어지는데, 특히 이 공 사상을 제대로 감득해 펼친 사람이 임제종의 비조인 임제(?~867) 선사다. 임제는 인간을 고통에 빠뜨리는 실체나 본질에 대한 모든 집착을 산산이 부숴버리려고 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지은이가 보기에 “해탈이란 다른 어떤 것의 지배도 받지 않고 스스로 주인으로 서게 되는 경험”이다.

 

고명섭 기자 한겨레 문화부문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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