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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책] ‘중도 통합’으로 분단체제 극복을



시민참여 통일 과정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등록 2010-07-03 15:14 수정 2020-05-03 04:26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백낙청 지음, 창비 펴냄, 1만7천원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한반도 분단체제에 관해 쓴 자신의 네 번째 책 를 출간했다.

지난해 7월에 쓴 상당한 분량의 서장에 붙인 제목이 ‘시민참여 통일 과정은 안녕한가’다. 안녕한지를 자문하고 점검해봐야 할 정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는 얘기고, 그게 책을 낸 이유다. 백 교수가 내린 결론은, 안녕하진 못하지만 회복 불능일 정도는 아니며 위기가 문제의 본질을 더 선명히 드러나게 만들어 오히려 더 절실해졌고 실천 전망도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통일은 현재진행형

2006년 5월에 세 번째 책 이 나왔을 때 분명 낡은 분단체제는 흔들리고 있었고, 늘 순조롭진 않았으나 통일을 향한 남북의 발걸음엔 가속도가 붙고 있었다. 2007년 10월 2차 남북 정상회담과 ‘10·4 공동선언’ 발표 뒤까지 철도가 연결되고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 해결 단초가 마련됐으며 고위급 회담은 차원을 높여가고 있었다.

통일은 확실히 현재진행형이었다. 그런데 세 번째 책 출간 뒤 3년 만에 세상은 딴판이 됐다. 6·15 선언과 10·4 합의는 거의 사문화됐다. 개성관광과 철로가 다시 막히고 개성공단도 위태롭다. 남쪽 내부 민주주의마저 ‘87년 체제’ 이전 수준으로 후퇴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지 불과 1년6개월 만의 이런 퇴행 속에 ‘한반도식 통일론, 현재진행형’이라는 명제가 도대체 성립 가능한가?

백 교수는 그럼에도 “그렇다, 성립 가능하다”고 했다. 흔들리던 분단체제가 다시 안정을 회복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안팎의 조건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던 남북의 독재권력 가운데 남쪽이 1987년 6월 항쟁을 끝으로 무너졌다. 그리하여 분단체제가 동요기에 들어섰다. 분단체제의 국제적 버팀목이던 냉전 또한 무너졌다. 게다가 신자유주의 파탄과 함께 분단경제를 떠받쳐주던 개발독재형 경제성장도 불가능해졌다.

취약한 북쪽의 붕괴를 기다리거나 촉진하는 게 최선이 아니냐는 ‘전략가’들도 적지 않지만, 북의 사정이 더 어려워진다고 해서 무너지는 건 아니다. 그리고 북의 사정이 어려워지면 남북 주민 모두가 입을 손실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전쟁 위험성이 높아진다. 설사 북 체제가 무너지더라도 남쪽보다는 아마 중국이 미국의 묵시적 양해 아래 북에 개입하고 관리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포용·햇볕 정책으로 되돌아가 6·15 공동선언을 실천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는 게 백 교수의 생각이다. 그리하여 “한반도 주민 모두의 최대 시대적 과제”인 분단체제 극복을 향해 나아가야 하며, 그것을 위해선 남북의 사회를 바꿔야 한다. 남북 전체를 시야에 넣은 개혁, 곧 분단체제의 ‘변혁’을 이룩해야 한다. 그러려면 분단체제를 고수하려는 수구 기득권층, 급진적 계급혁명이나 교조적 민족해방론을 부르짖는 비현실적 과격 노선 등 양극단을 배격하고 합리적 보수와 성찰하는 진보를 아우르는 ‘중도’ 통합을 해야 한다.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장기 목표를 공유하는 변혁적 중도주의는 구성원 모두의 자각과 마음 공부가 필요하다. 분단체제 환원주의도 경계해야 하지만, 적잖은 진보 세력도 물들어 있는 ‘후천성 분단인식 결핍증후군’은 더욱 경계해야 한다.

느슨한 남북 연합, 변혁의 1단계

백 교수는 “남쪽의 연합제안과 북쪽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며 그 방향으로 통일하자고 합의한 6·15 선언 제2항을 한반도 특유의 시민참여형 통일을 위한 절묘하고도 중대한 진전이라 평가한다. 서로의 차이점을 따지기보다는 공통점에 주목하면서 ‘두루뭉술하게’ ‘어물쩍’ 넘어간 이 부분의 모호성이야말로 결과적으로, 통일 방안을 담합하거나 적당히 무산시킬 수도 있는 정부 쪽에 전권을 넘겨주지 않고 “시민참여의 양과 질에 따라 얼마든지 (결과가) 달라질 여지를 남겨놓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남북 연합 건설은 당국자끼리의 협상만으로 결정할 성질이 아니고, 10·4 선언 합의대로 정상 간의 ‘수시’ 만남과 각급 회담 및 기구와 병행한 민간 차원의 접촉과 대화, 인도적 지원사업과 경제 및 사회·문화 영역에서의 공동사업이 누적됐을 때 ‘어느 날 문득’ 당국자들이 추인하는” 그런 것이라고 했다. 백 교수는 느슨한 형태의 남북 연합만으로도 1단계 통일은 완성된다고 했다. 바로 변혁의 1단계 완성이기도 하다.

한승동 선임기자 한겨레 문화부문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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