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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네, 삶도 축구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6월호, FIFA의 ‘머니 게임’과 세계의 ‘황금 과두제’를 파헤치다
등록 2010-06-09 22:15 수정 2020-05-03 04:26

한국판도 6월호에서 월드컵을 피해가진 못했다. 프랑스 언론인 다비드 가르시아는 누구나 알고 있는, 그러나 알 때마다 놀라는 월드컵의 ‘머니 게임’을 추적한다. 축구공 대신 돈뭉치가 굴러다니는 이 경기에서 규칙을 정하고 선수를 고르고 승부마저 결정짓는 존재가 국제축구연맹(FIFA)이다.

<font color="#00847C">돈다발로 당선되는 FIFA 회장</fon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6월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6월호

1904년 설립된 FIFA는 2009년 1억4700만유로의 수익을 냈다. 보유자산이 계속 늘어나 2009년엔 7억9500만유로에 달했다. 축구 한 종목을 주관하는 협회에 이렇게 젖과 꿀이 흐르는 이유는 다국적기업과의 로맨스 때문이다. FIFA와 다국적기업의 결혼식은 1974년 6월11일 서독이 개최한 프랑크푸르트 월드컵 때 성사됐다고 가르시아는 말한다. 그에 따르면, 당시 회장으로 당선된 주앙 아벨란제의 뒤에는 대의원들에게 돈뭉치를 뿌린 ‘아디다스 프랑스’의 회장 호르스트 다슬러가 있었다. 두 사람은 갈수록 수익성이 높은 협약을 체결했고 굴지의 대기업들을 끌어들였다. FIFA의 마케팅 규모가 커지면서 간부들의 횡령과 사기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FIFA 지도부는 지나치게 사랑만 받고 큰 철부지들이다.”

가르시아는 FIFA에서 자행되는 부조리의 최고봉으로 회장 선출 방식을 꼽는다. 인구수와 무관하게 회원국은 각자 한 장의 투표권을 가진다. 이 때문에 FIFA의 권력자들은 유럽의 미니 공국이나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표를 돈으로 사온다. 가난한 나라 축구협회의 회장들은 돈다발을 받은 보답으로 일관되게 FIFA 회장의 편을 든다.

스포츠 사회학자 이정우씨는 SBS의 월드컵 독점 중계 문제를 깊이 들여다본다. 그에 따르면, SBS의 독점 중계는 FIFA의 욕망 때문이기도 하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까지 월드컵 중계권료는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월드컵 중계의 중요성이 커지자, FIFA는 한·일 월드컵과 독일 월드컵 때 이전보다 10배 이상 비싼 값으로 대행사에 중계권을 양도했다. 재미를 단단히 본 FIFA는 남아공 월드컵부터 직접 나서서 중계권을 팔기로 결정했다. 원래 한 나라의 방송사들은 서로 연합해 중계권 협상을 하는 게 관례였다. 한국도 남아공 월드컵 이전까지 3개 방송사가 ‘코리안 풀’을 만들었다. 그런데 FIFA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협상단이 아니라 개별 방송사에 직접 중계권을 팔기 시작했다. 이것이 SBS가 독점 중계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FIFA의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는 흥미롭고 두려운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권력과 자본의 과두제가 1990년대부터 덩치와 근육을 불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축구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6월호 특집의 제목은 ‘황금 과두체제의 시대’다. 프랑스판 발행인 세르주 알리미는 이 과두체제를 “금융의 하인 신세로 전락한 국가”라고 표현한다. 알리미의 분석은 1996년 봄 재선 유세를 준비하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선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떠올린 아이디어에서 시작된다. 그 아이디어란 비용을 치르면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커피 타임’을 갖게 해준다는 것이다. 1996년 5월13일 미국의 주요 은행 대표들이 대통령과 ‘커피 타임’을 즐겼다. 그 자리에서 은행가들은 금융규제 완화에 대해 토론했다. 클린턴은 금융자본의 지원 속에 재선에 성공했고, 1999년 은행과 기타 금융기관을 겸업할 수 없게 하는 ‘글래스-스티걸법’을 철폐했다. 결과는 뻔했다. 투기꾼들의 잔치가 시작되고 서브프라임 모기지처럼 복잡한 금융상품이 등장했다.

<font color="#C21A8D">유럽연합의 기원에는 기업단체가</font>

이탈리아에서는 최고 부호들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아예 ‘포르자 이탈리아’(전진 이탈리아)라는 정당을 만들어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비호했다. 알리미에 따르면, 공직자와 기업 임원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지기 때문에 과두제가 가능하다. 미국에서 고위 공직자는 임기가 끝나자마자 민간 기업의 이사, 은행 자문위원 등으로 변신한다. 그 역도 가능하다. 프랑스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언론인 프랑수아 루핀은 유럽연합의 과두제를 그 기원부터 파헤친다. 네슬레·르노·지멘스 등 45개 기업 경영자가 가입한 단체 ‘유럽 기업인 라운드 테이블’(ERT)은 유럽연합 창설 작업에 깊숙이 관여했다. 1993년 유럽집행위원회 의장이던 자크 들로르는 “ERT야말로 내 제안을 앞장서 지지해준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ERT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거쳐 유럽헌법 조약에 이르기까지 각국에 로비를 벌이면서 유럽 통합과 관세·무역 장벽 철폐를 부르짖었다. 루핀은 말한다. “사회주의적 유럽의 실현은 까마득하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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