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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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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을 정리하는 2010년 ‘예언서들’

‘2010’을 큼직하게 달고 나온 책 4권,
2010년 트렌드를 알려면 2011년까지 1년 더 기다리시라
등록 2009-12-31 11:48 수정 2020-05-03 04:25

예언자는 언제나 거짓말쟁이다. 예언은 항상 그날이 오기 전까지만 유효하다. ‘2010’을 커다랗게 붙인 ‘예언서’들이 그날이 오기 전에 쏟아져나왔다. 2009년 막바지에. 이들 예언서가 거짓말을 하는 게 있으니, 2010이라 붙였으나 2009년의 결산이라는 것. 뭐, 어쨌든 2009년과 2010년은 하루 차이밖에 안 나는걸.

2009년을 정리하는 2010년 ‘예언서들’

2009년을 정리하는 2010년 ‘예언서들’

불안 그리고 개인화·파편화

(MBC 지음, 북하우스 펴냄)는 ‘지금 현재’를 읽기에 좋다. iMBC 패널 460명의 사전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트렌드세터 직업군 500명을 대상으로 본 설문조사를 벌이고, 트렌드리더 대학생 20명의 표적 집단 면접, 각계각층 전문가 30명의 심층 인터뷰를 종합했다. 방대한 자료를 결합해 16개의 주요 트렌드, 54개의 핵심 키워드를 끄집어냈다. 몇 개는 형식적이고 몇 개는 당연하고 몇 개는 소수의 경향으로 보이지만, 빼곡한 키워드는 2009년을 정리하는 데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16개의 핵심 키워드는 정서적 허기, 디지털 네이티브, 뷰티풀 루저(청년백수 문화), 콘셉트 워킹(걷기 열풍), 일상적 안심(범죄와 병에 대한 경각심), 집단지성, 아트 넥스트 도어(일상에서 찾는 예술), 착한 저항, 신남녀공학(혼합돼가는 남녀 역할), 세컨드 라이프(노인을 위한 실버산업), 체감형 시대, 코드 그린(녹색산업), 쌩얼의 시대(프로슈머 시대), 한식 한류, 손바닥 IT, 게릴라 크리에이티브(색다른 방식의 광고·마케팅 등)다.

편집자는 가장 눈에 띄는 트렌드가 ‘불안 코드’라고 말한다. 소통의 단절은 그의 확장이다. 칸막이를 한 ‘라멘집’이 문을 열고 영화나 공연의 1인 예매율이 높아지고 있다. 틀어박힌 사람들은 익명의 누군가에게 손짓을 한다. 동시에 접속한 사람들이 채팅을 하는 ‘랜덤 채팅’이 등장했다. 한 회사원은 유리병에 편지를 넣어 바다에 띄우듯, 익명의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는 ‘물병편지’를 고안했다. 불안의 시대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한국CM전략연구소 심정원 책임연구원은 농담 같은 메시지만 받아들이는 시대라고 진단하고, 문화평론가 강명석은 중간은 없이 안티 아니면 빠순이만 있는 시대라고 말한다. 진짜 2010년 트렌드를 다룰 가 벌써 궁금하다.

(KOTRA 지음, 청림출판 펴냄)는 전세계의 산업 경향을 리포트한다. 물론 2009년에 눈길을 끈 상품과 트렌드다. 중국에서는 여성이 소비의 중심으로 나타났다. 자본주의의 특별한 비법 ‘세일’은 중국 여성에게 복음이 된 듯하다. 이슬람 국가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워낙 소비에서 물러나 있었기 때문이리라. 화장품에 관심을 가진 남성이 늘어나고, 실버산업이 떠오르는 것은 전세계적 공통 이슈다. 영국에서는 미니 사이즈의 가전제품이 인기를 끌었다. 싱글족이 늘어나서다. 이 역시 전세계가 공통이다. 대만에서는 15cm짜리 1인용 피자가 출시됐다. 일본의 초식남은 먼 옛날 이야기같이 느껴지는데 스고모리족은 처음이다. 집에서만 오락·식사·쇼핑을 해결하는 사람들이다. 개인화·파편화에 산업도 눈독 들이고 있다.

‘신상털기’를 아십니까

디지털 분야에 관해서라면 (SBS 서울디지털포럼 사무국 지음, 살림Biz 펴냄)가 2009년 현재를 정리한다. 디지털포럼이 2009년 5월 이틀에 걸쳐 진행한 포럼을 정리한 것이다. 주제는 디지털 시대의 스토리텔링(‘Story- A New Chapter’)이었지만 여러 석학들은 ‘주제에 구애됨이 없이’ 디지털 시대의 경향을 보여준다. 의 저자 클레이 셔키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동방신기 팬클럽에 주목한다. 이들에 의해 ‘정치-문화’의 낡은 이분법이 무너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김민주 지음, 미래의창 펴냄)는 무려 314개의 키워드를 열거한다. 뽐뿌질(구매 욕구를 부추기는 행위), 신상털기(네티즌이 합심하여 표적인물의 개인정보를 찾아서 인터넷으로 퍼트림) 등 시대에 뒤처진 중진들에게 권할 만한 단어와 죄악주(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기업의 주식), 다크 투어리즘(역사적 비극의 현장으로 여행하는 것), 상콩(상하이와 홍콩을 합친 말) 등 언론사 시험에 대비하는 이들을 위한 듯한 신조어가 대거 등장한다. 2010년 신년호를 만들고 있는 현재, 사실은 2009년 크리스마스이브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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