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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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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가는 제국의 염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11월호, 미 패권주의와 한국 ‘변절 시비’ 해부
등록 2009-11-11 14:18 수정 2020-05-03 04:25

위기의 미국은 지금이라도 소프트파워로 ‘전향’할 자세가 돼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이하 ) 한국판 11월호는 여전히 하드파워에 집착해 패권을 놓지 않으려는 말기 제국의 몰골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경제위기 책임 아시아에 떠넘기는 미국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11월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11월호

저자인 프랑수아 셰스네 프랑스 파리13대학 교수는 경제학자들의 기회주의적 행태를 통해 염치없는 미국의 오늘을 읽어낸다. 대규모 경제위기가 도래할 가능성을 부정해오다가 지난해 9월을 기점으로 침묵하거나 말을 바꾼 경제학자들이 올 상반기부터 세계적 차원의 지각변동을 우려하는 책들을 쏟아놓았다. 물론 중국 등 아시아의 부상과 미국·유럽의 쇠퇴에 초점을 맞췄다. 그 우려는 불만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흥청망청 쓰지 않았다면 너희가 알뜰살뜰 살아갈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위기 전엔 ‘글로벌 불균형’을 즐기다가 이젠 아시아를 ‘도덕적 채무국’으로 지목해 미국 경제를 살려내기 위해 다시 한번 위험을 감수하라고 압박한다. 이들은 일단 금융 시스템이 정비되면 세계경제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셰스네 교수는 서브프라임이 설사 완전한 투명성을 확보했더라도 부동산 버블 붕괴는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소수 학자들의 손을 들어준다. “진정한 해법은 민주주의를 모든 경제관계 속에서 실현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신용 시스템의 사회화와 자원 배분의 결정권 문제로 귀착된다.”

세계를 볼모로 잡은 미국의 ‘인질극’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미 알몸을 드러내고 있다. 윌리엄 P. 포크 시카고대 사학과 교수는 반면교사를 상기시킨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은 10년에 걸친 격전과 1만5천여 명의 인명 피해란 대가를 치르고서야 자신들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포크 교수는 무자헤딘에 맞선 이 전쟁이 사실상 소련을 파멸시켰다고 봤다. 그는 또 “린든 존슨이 베트남전에서 그랬듯 오바마에게 아프간전은 치명적일 것”이라고 경고한다. 서구 이데올로기의 폭력적 억압에도 탈레반의 힘이 되레 커지는 이유는 뭘까? 패트릭 포터 영국 군사전문가는 탈레반이 서구 기술을 이용해 놀랍도록 유연해졌다고 평가한다. 예를 들면 “과거에 악기를 금지했지만 지금은 선전용으로 가수를 고용하고 미국의 랩을 본떠 순교를 찬양하는 노래를 배포한다.” 탈레반이 ‘문화혁명’을 통해 반란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르주 알리미 발행인은 “우리 병사들이 아프간에 목숨을 거는 게 과연 온당한 것이냐”고 묻는다. 일부 아프가니스탄 국민에게 탈레반 체제의 정당성을 자극하는 향수까지 불러일으키면서 하미드 카르자이가 대통령에 당선된 마당에 파병은 더욱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냉큼 아프간의 무대에 다시 서려고 한다. 스스로를 인질로 규정하며 인질범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는 신종 ‘스톡홀름 증후군’에 감염된 건 아닐까?

한국판은 변절자란 호명은 넘치지만 변절에 대한 성찰은 빈곤한 현실에 주목해 ‘변절과 전향’에 관한 특집을 마련했다. 남재일 경북대 교수는 “남한에서는 ‘우의 이념=생존을 위한 전략’ ‘좌의 이념=정치적 이념에의 헌신’으로 인식됐다”면서 ‘전향’을 강권하는 우파의 정치적 무의식은 뿌리 깊은 도덕적 열등감을 잊으려는 충동으로 꽉 차 있다고 말한다. 최근의 진보 인사와 지식인들의 전향을 가장 우호적으로 해석하는 시각은 도덕적 우월성이란 틈새시장에 만족해온 진보 진영이 현실을 껴안는 품을 넓히는 걸로 보는 것이며, 가장 비우호적인 시각은 도덕적 ‘변절’로만 보려는 것이라고 남 교수는 진단한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지금 한국 사회에서 진정 심각한 문제는 지식인 몇몇이 보수로 전향한 것이 아니라, “대다수 시민이 ‘몸’까지 진보로 전향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입은 진보-몸은 보수’ ‘소비는 진보-생산은 보수’ ‘광장에서는 진보-밀실에선 보수’라는 정치적 분열증을 치유하는 게 우선이라는 얘기다.

프랑스 거대 매체들의 ‘막장 상업주의’

한국판 11월호는 프랑스의 관제 문화와 미디어의 경박함을 세 꼭지에 걸쳐 다루고 있다. 특히 로마의 검투사를 연상시키는 격투기 중계로 군소 케이블TV가 재미를 보자 거대 매체들이 여기에 속속 뛰어드는 ‘막장 상업주의’는 종합편성채널을 띄우려는 한국의 미디어법 사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지난해 말 쿠데타로 권좌에 오른 뒤 자유선거로 권력을 민간에 이양하겠다는 젊은 장교의 약속이 의심받고 있는 아프리카 기니의 현실은, 30주년을 맞은 ‘부마항쟁의 망각과 박정희 숭배’의 길항관계로 이어진다.

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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